〈아큐를 위한 변명〉
<아큐를 위한 변명>
이상수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6000원 세계 미술시장에서 최고가에 팔리는 중국 현대 화가 웨민쥔의 그림 속에선 모두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다. 중국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짧은 머리에 얼굴이 불그레한 남자들이 때론 천안문 광장에서 총을 겨누고 총에 맞으며, 때론 서로를 찔러 죽이며, 때로는 거대한 공룡이 된 채 웃는다. 현실에 눈을 질끈 감은 채 웃지만 씁쓸한 비애가 느껴지는 얼굴들이다. 우리가 아는 또다른 중국인의 얼굴은 <삼국지> 속 영웅들, 열린 마음으로 펑요우(친구) 사귀기를 좋아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호방한 대륙적 모습이다. 허허벌판에 홀로 우뚝 선 마음으로 하늘 아래 누구와도 벗이 될 수 있고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하오커(好客) 기상이다. <아큐를 위한 변명>은 호방한 ‘대륙 기질’과 졸렬한 ‘아큐 기질’이 공존하는 중국인들의 ‘두 얼굴’에 어떤 역사적 유전자가 새겨져 있는지 탐구한다. 중국 철학을 전공한 학자이자 특파원으로 많은 중국인들을 만났던 지은이가 ‘중국인이란 누구인가’에 답을 내놓는다. 거기엔 중국 역사와 철학, 시구, 공산당 권력자들과 라오바이싱(평민)의 온갖 면모가 종횡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제국의 건설과 붕괴, 곧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대륙의 역사는 중국인들의 심성에 웅혼과 졸렬이 공존하는 모순적 주름을 남겼다.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분열의 시기에 중국인들은 천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을 열고 자아를 확장했다. 제후들은 열린 마음으로 천하의 인재를 포용했고, 이 개방적인 태도가 호방한 대륙 기질로 남았다. 지은이가 중국 특파원 시절 화이허(회하)의 오염을 취재하려고 중국 정부의 감시망을 뚫고 찾아간 안후이성 벙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 외국인 기자의 취재를 지원해준 왕 선생은 “친구가 부탁했기 때문에 무조건 최선을 다해 돕는다”고 말한다. 이는 광활한 대륙에서 흩어져 살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품앗이이자 사회적 규율이기도 하다.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의 상반된 초상화. 험상궂은 사내의 얼굴(오른쪽)은 민간에서 내려온 것이고 성군의 얼굴은 궁정에서 제작된 것이다. 지은이는 궁정에서 제작된 초상화의 작위적인 기풍을 통해 되레 그가 자행했던 아큐적 전제통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제국의 시기엔 분열봉쇄 폭정
공산당도 “안정이 모든것 압도”
중원 통제 시스템이 의식 규정 분열의 시대가 가고 통일 제국의 시기가 오면 통치자는 가장 가혹한 수단을 동원해 분열의 조짐을 짓밟는다. 황제가 된 자들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아걸고 폭정을 휘둘렀고, 공포에 질린 신민들은 권력에 완전히 굴복해 철저히 순응하게 된다.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에서 폭압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항복한 채 눈곱만큼이라도 우세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보이면 안하무인으로 유세를 떨고, 허용된 공간 안에서는 소극적인 몸부림으로 자기기만적 만족을 추구하는 아큐가 그 상징이다. 전제통치의 도구가 되기도 싫고, 아큐가 될 수도 없는 지식인들은 속세를 떠나 산속으로 숨어 은자 기질을 키웠다. 중국 지식인 사회가 결사를 넘어 대동(大同)의 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뿌리이기도 하다. 현재의 중국 역시 제국의 질서를 그대로 보존한 하나의 왕조다.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판도를 장악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도 과거 황제들처럼 중원의 분열을 가장 두려워한다.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그들의 최우선 가치다. 중국 공산당은 7415만여 당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단일 조직이며,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9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그중 한 사람인 총서기가 있다. 이들 링다오(지도자)들은 당연히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중국 공산당은 “하늘 아래 도가 있으면 서민이 정치를 논의하지 아니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철저히 구현한다. 문 뒤의 회의(폐문회의)에서 엘리트들끼리 치열한 논쟁을 벌여 비밀스럽게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고, 이 결과에 대해 서민들은 간섭할 수 없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만 볼 수 있는 <내부참고> 매체가 따로 있고,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뉴스는 모두 철저히 통제된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검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지은이는 ‘달라이 라마가 중국 국가 주석이 될 수 있을까’라는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숨구멍조차 없는 용광로처럼 보이는 닫힌 중국이 다시 역사 속의 지적인 풍요와 열린 대륙기질을 회복하기를, ‘세계의 공장’을 넘어선 ‘세계의 열린 중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중국 인민이 열린 중원의 가치를 새로이 발견할 때 중국과 아시아는 새로운 역사를 써가게 될 것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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