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당선작
악몽같은 현실서 도망친 소년 얘기
미스터리·호러·판타지 두루 갖춰
악몽같은 현실서 도망친 소년 얘기
미스터리·호러·판타지 두루 갖춰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지음/창비·8500원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자신의 존재가 아버지에게는 무관심이고, 새어머니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열여섯 살 소년에게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다. 청소년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는 어른들의 누적된 고통과 불행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는 주인공을 ‘마법의 빵집’ 안으로 피신시킨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소년을 부조리한 현실 세계에서 들어 올려 전혀 다른 환상의 세계에 내려놓는다. 이런 일탈은 성장의 가파른 대목에서 위태하게 비척거리던 주인공을 안전하고 아늑한 오븐에 넣어 두고 싶은 성인다운 보호 본능이 빚어낸 설정이겠지만, 한편으론 매일 아침 호명하는 교실에, 사무실 책상에, 무감한 얼굴로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는 청소년과 어른의 공통적인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빵을 싫어하면서도 날마다 빵을 먹어야 하고 마침내는 마법의 빵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는 소년의 운명은 공부에 얼굴을 파묻고 학교에 갇혀 한 시절을 견디는 청소년들의 운명에 대한 패러디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당선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 소설과 ‘다르다’는 점을 미덕이자 목표로 삼은 소설이다. 작가는 버림받은 충격으로 말을 더듬는 주인공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하는 동생에 대해서도 딱히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다.
가족들 모두는 그릇된 욕망이나 메마른 결혼 등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감내하면서 살아간다.
마법의 빵집에서도 이런 냉담한 관계는 그대로 통용된다. 주인공을 기다리는 것은 위무의 손길도, 드넓은 경험의 바다도 아니다. 망쳐 버리고 싶은 사람에게 먹이는 시나몬 쿠키,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던 사람을 단박에 스토커로 바꾸는 프레첼, 저주하고 죽일 수도 있는 부두인형 같은 위험천만한 것들을 팔면서도 빵집 주인은 이 흑마술이 누구를 망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어떤 과제도 없다. 용기만 내면 태평양도 건널 수 있고, 마법에 맞서 세계를 지킬 수 있다고 격려하던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무인도에서 소년들을 구출해 오거나(<15소년 표류기>), 환상 세계에서 화석이 되어 가는 소년을 현실로 호출하는(<끝없는 이야기>) 어른들은 이 책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기존 청소년 소설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요즘 작가들의 경향이기도 하다. 상상과 성장, 화해와 안식은 사라지고 판타지 소설조차도 판타스틱한 꿈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집을 나온 주인공은 본토로 돌아갈 수 없을까? 작가는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삶의 흐름을 바꾸는 마법이 아니라 “자신을 오해 대신 그대로 인정하는 누군가”라고 넌지시 일러 준다. 주인공이 한 시절을 견뎌 내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힘은 이것이다. 비록 그렇게 다다른 땅이 “누군가 씹다 버린 껌 같은 삶”이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말과 글의 위력을 믿는 청소년 소설의 왕국에 아직 한 발을 담그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구병모 지음/창비·8500원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자신의 존재가 아버지에게는 무관심이고, 새어머니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열여섯 살 소년에게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다. 청소년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는 어른들의 누적된 고통과 불행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는 주인공을 ‘마법의 빵집’ 안으로 피신시킨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소년을 부조리한 현실 세계에서 들어 올려 전혀 다른 환상의 세계에 내려놓는다. 이런 일탈은 성장의 가파른 대목에서 위태하게 비척거리던 주인공을 안전하고 아늑한 오븐에 넣어 두고 싶은 성인다운 보호 본능이 빚어낸 설정이겠지만, 한편으론 매일 아침 호명하는 교실에, 사무실 책상에, 무감한 얼굴로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는 청소년과 어른의 공통적인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빵을 싫어하면서도 날마다 빵을 먹어야 하고 마침내는 마법의 빵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는 소년의 운명은 공부에 얼굴을 파묻고 학교에 갇혀 한 시절을 견디는 청소년들의 운명에 대한 패러디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당선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 소설과 ‘다르다’는 점을 미덕이자 목표로 삼은 소설이다. 작가는 버림받은 충격으로 말을 더듬는 주인공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하는 동생에 대해서도 딱히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 시절을 견뎌낸 내 모습을 그려봐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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