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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거꾸로 가는 역사 ‘성난 얼굴로 돌아보다’

등록 2009-04-10 19:04수정 2009-04-10 19:07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건국절·부동산 투기·신자유주의…
한홍구 교수, ‘역사 역주행’ 비판
“목숨 걸고 싸워야 역사는 진보”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1만4000원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요새처럼 크게 흔들린 때가 있었을까? 눈앞에 모든 것들이 거꾸로 달려가고 피땀 뿌려 쌓아올린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듯 보일 때. 그렇다고 손 놓고 당혹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마음을 다시금 다지기 위해서 펴드는 것이 역사다. 과거를 들어 오늘을 다시 이해하려는 노력, 오늘날 역주행의 본모습을 간파하고 이로써 다시 역주행을 최소화하려는 애씀,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다시금 역사가 가야 할 방향을 되새기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소홀하게 생각하기까지 했던 것들에 대한 절실함을 되찾는 일 말이다.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는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이토록 속절없이 반동의 시간을 마주하지만 않았더라도 나올 필요가 없는, 나와서는 안 되는 책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눈물겹다. 안타까우면서도 반갑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가 짚어내는 오늘날의 역주행은 우선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 시작한다. 뉴라이트판 역사 다시 쓰기의 절정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건국절이다. 건국절 논란이 터져나온 연유를 설명하기 위해 뉴라이트의 뿌리를 먼저 파헤친다.

제대로 된 진보가 없었던 나라에 보수라고 제대로 있었겠는가. 우리가 진보라고 불러온 건, 그나마 최소한의 상식을 지켜온 우파였다고 한 교수는 정곡을 찌른다. 비틀리고 왜곡된 우리의 이념 지형이 일제 침략과 일그러진 해방 전후사 탓이라면, 새로울 것도 없는 뉴라이트가 불쑥 나타난 것은 엉터리 보수 곧 수구 세력의 위기의식에서 기인했다. 친일파에 뿌리를 둔 뉴라이트가 광복절 대신 건국절 만들기에 집착하는 것은 애처로워 보일 정도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광복절에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광복절에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문제가 총론이라면, 이어지는 2~8강은 각론이다. 잊혀진 유행가인 줄 알았더니 어김없이 리메이크되고야 만 ‘조작 간첩 사건’, 정부의 애착이 질기고도 질긴 대운하 사업과, 사람 목숨이 휴지장처럼 여겨지는 뉴타운·재개발 뒤에 숨어 있는 부동산 투기와 토건 국가의 과거사가 먼저 역사 역주행의 실례들로 제시된다. 이어서 공기업 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 작업, 소통의 맥이 끊긴 자리에 떼를 지어 부유하는 괴담들, 일제 강점기 순사와 친일 경찰의 ‘전통’을 이어가는 오늘날 경찰 폭력의 문제, 적자생존의 피 터지는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데서 나아가 경쟁의 방편마저 원천봉쇄하고 만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 등도 뉴라이트판 역사 되돌리기의 생생하고 적나라한 현장들로 꼽힌다.

이 책은 한 교수가 지난해 말 8주에 걸쳐 강의로 풀어낸 것을 묶어낸 것이다. 역사 되돌리기가 시작된 대선을 치르고 1년여가 지난 시기였다. 어쩌면 강의들은 더 험한 앞날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하다. 나아가 역사 역주행의 되짚기는 역주행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강의 뒤 책이 나오기까지 100여일 사이에 역사 역주행의 사례들은 숨가쁘게 속출해 왔던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의 해직 행렬이 재방송처럼 눈앞에 펼쳐졌고, 경찰은 ‘약자 앞에 폭력, 강자 앞에 굴복’의 과거를 매일같이 되풀이하고 있으며, 용산 철거민들의 어이없는 희생은 악몽인 듯 국민들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이명박 정권의 속도전 앞에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지키며 과거를 들어 오늘을 톺아보는 노력은 허망하게조차 느껴진다. 그러기에 한 교수는 1980년 광주의 이야기를 꺼내든다. “1980년 광주를 겪은 후에도 학생운동과 청년운동 주변을 서성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 겁 많고 조금은 비겁한 20대였다. 광주를 겪었으니 악랄한 학살 정권과 싸우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내가 스스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각오는 가져본 적이 없다.” 이런 고백 끝에, 그는 “쉰이 넘은 지금 오히려 … 이광웅 선생의 <목숨을 걸고> 같은 시가 절절하게 와 닿는다”고 고백한다.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중략)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 오늘 우리 사회의 역주행을 절절히 느끼는 평범한 이들이 가장 공감하는 대목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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