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
‘인디고 아이들’ 청소년 토론회
스스로 자신과 사회문제 탐구
박원순·하워드 진 등과 대화도
스스로 자신과 사회문제 탐구
박원순·하워드 진 등과 대화도
〈정세청세〉
인디고 아이들 지음·윤한결 등 엮음/궁리·1만5000원 “네가 진짜 사회에 나간다면 그런 철부지 같은 말 못할 거다.” 현실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으레 돌아오는 어른들의 답변이다. 한 아이가 반박한다. “어른들은 ‘진짜 사회’에 매몰돼 순수나 배려 같은 것을 잊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진짜 사회’에 나가기 전 지녔던 마음을 다시 찾는다면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이 아이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정세청세) 토론회의 참가자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서점 인디고서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인디고 아이들’이 기획·진행하는 행사다. 청소년들이 직접 꾸린 이 인문학 토론 행사는 2007년 5월 시작됐다. 노숙자 같은 소외계층에 대한 인문학 강좌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얼 쇼리스의 책 <희망의 인문학>이 계기였다. 모두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기에 재미없고 지루한 학문이리라 비관했던 청소년들의 참여는 놀랍게도 2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디고서원이 있는 부산에서만 열리던 정세청세는 올해 부산 외에도 대구·서울·순천·울산·전주 등 전국 6곳으로 개최 범위를 확대했다. 주최 쪽은 전한다. “많은 청소년은 자기 자신과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정의로운 순간을 지지하고 대면하는 법을 알고 싶어했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인디고 아이들이 올 1월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실에서 하워드 진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궁리 제공
가령, 좋은 일자리를 위해 학벌 지상주의에 순응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는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의 존엄을 짓밟힌다는 근본적 문제가 더 크다. 학벌이 없는 사람은 사회가 그어놓은 선 너머로 기회를 꿈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적으로 증폭될 때엔 촛불을 직접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만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으면 된다는 이기적 욕망에서 비롯된 시위일 수 있다는 고민이 나왔다. 광우병 걸린 소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식물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공장용 식품으로 바꾼 생태적 위기와 우리가 광우병 쇠고기를 거부할 때 더 가난한 나라들이 그 고기를 먹을 고통도 염두에 둬야 했다. 세계와 소통하겠다고 나선 청소년들인 만큼 담론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지 않는다. 강수돌·박원순·조국 등 선배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자신을 인터뷰하러 보스턴대학에 온 이들에게 “현실의 어떤 소식도 당신의 이상을 방해하도록 놔두지 말라.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또 그 일이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당신의 이상을 포기하도록 놔두지 말라. 이상을 지키는 한 당신은 현실에 갇히지 않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인디고 아이들은 “청소년들이 깨어 있지 않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의 부조리를 느끼면서 그것을 바꾸려는 신념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열쇠는 인문학이다. 우리말로 인문학이라고 번역되는 말들을 보면 그 성격이 자유로우면서도(Liberal Arts) 인본적(Humanities)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답은 거기에 있는 걸까. 앞서 어른들의 ‘진짜 사회’에 물음을 제기한 참가자는 “나의 가치가 이 세상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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