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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문학 열쇠로 우리 꿈 열어가요

등록 2009-04-17 22:10수정 2009-04-17 22:11

〈정세청세〉
〈정세청세〉
‘인디고 아이들’ 청소년 토론회
스스로 자신과 사회문제 탐구
박원순·하워드 진 등과 대화도




〈정세청세〉
인디고 아이들 지음·윤한결 등 엮음/궁리·1만5000원

“네가 진짜 사회에 나간다면 그런 철부지 같은 말 못할 거다.”

현실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으레 돌아오는 어른들의 답변이다. 한 아이가 반박한다. “어른들은 ‘진짜 사회’에 매몰돼 순수나 배려 같은 것을 잊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진짜 사회’에 나가기 전 지녔던 마음을 다시 찾는다면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이 아이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정세청세) 토론회의 참가자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서점 인디고서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인디고 아이들’이 기획·진행하는 행사다. 청소년들이 직접 꾸린 이 인문학 토론 행사는 2007년 5월 시작됐다. 노숙자 같은 소외계층에 대한 인문학 강좌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얼 쇼리스의 책 <희망의 인문학>이 계기였다.

모두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기에 재미없고 지루한 학문이리라 비관했던 청소년들의 참여는 놀랍게도 2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디고서원이 있는 부산에서만 열리던 정세청세는 올해 부산 외에도 대구·서울·순천·울산·전주 등 전국 6곳으로 개최 범위를 확대했다. 주최 쪽은 전한다. “많은 청소년은 자기 자신과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정의로운 순간을 지지하고 대면하는 법을 알고 싶어했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인디고 아이들이 올 1월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실에서 하워드 진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궁리 제공
인디고 아이들이 올 1월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실에서 하워드 진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궁리 제공

인디고 아이들은 정세청세와는 별도로 두 달에 한 번씩 인문 교양지 <인디고잉>을 낸다. 최근호인 3·4월호가 열여섯 번째로 나왔다. 그동안 실린 기사 가운데 올해 정세청세에서 다룰 8개 주제에 관한 글을 엮어서 이번에 책을 펴냈다. 글을 쓴 것도 엮은 것도 모두가 인디고 아이들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대개 1990년생인 만큼, 90년대생 청소년들의 인문학 담론을 최초로 담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들은 스스로를 “독재가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 태어나 자란 세대”라고 정의한다.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완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희는 여전히 억압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들은 ‘독재’라는 싸워야 할 적이라도 있었지만, 저희 세대는 그런 것이 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고려대 김우창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령, 좋은 일자리를 위해 학벌 지상주의에 순응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는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의 존엄을 짓밟힌다는 근본적 문제가 더 크다. 학벌이 없는 사람은 사회가 그어놓은 선 너머로 기회를 꿈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적으로 증폭될 때엔 촛불을 직접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만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으면 된다는 이기적 욕망에서 비롯된 시위일 수 있다는 고민이 나왔다. 광우병 걸린 소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식물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공장용 식품으로 바꾼 생태적 위기와 우리가 광우병 쇠고기를 거부할 때 더 가난한 나라들이 그 고기를 먹을 고통도 염두에 둬야 했다.

세계와 소통하겠다고 나선 청소년들인 만큼 담론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지 않는다. 강수돌·박원순·조국 등 선배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자신을 인터뷰하러 보스턴대학에 온 이들에게 “현실의 어떤 소식도 당신의 이상을 방해하도록 놔두지 말라.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또 그 일이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당신의 이상을 포기하도록 놔두지 말라. 이상을 지키는 한 당신은 현실에 갇히지 않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인디고 아이들은 “청소년들이 깨어 있지 않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의 부조리를 느끼면서 그것을 바꾸려는 신념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열쇠는 인문학이다. 우리말로 인문학이라고 번역되는 말들을 보면 그 성격이 자유로우면서도(Liberal Arts) 인본적(Humanities)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답은 거기에 있는 걸까. 앞서 어른들의 ‘진짜 사회’에 물음을 제기한 참가자는 “나의 가치가 이 세상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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