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300호 돌파를 기념해 마련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관계자들. 왼쪽부터 시인 이시영·박형준·신경림·나희덕씨와 고세현 창비 대표. 정용일 기자 yong@hani.co.kr
6월까지 전국 낭송회
“처음 ‘창비시선’의 첫 책으로 <농무>를 낼 때만 해도 이 시리즈가 이렇게 길게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창비의 비판적인 성향에 대한 당국의 탄압이 심해서 머잖아 출판사가 문을 닫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1975년 3월 창비시선의 맏형으로 시집 <농무>를 낸 신경림(74) 시인은 이 시리즈의 300번 기념 시선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를 손에 들고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0일 저녁 서울 홍대앞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창비의 편집자를 거쳐 부사장을 지냈으며 그 자신 <만월>을 비롯해 여러 권의 시집을 이 시리즈를 통해 낸 이시영(60) 시인이 거들었다.
“내면 탐구와 난해한 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농무>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죠. 민중의 삶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노래한 이 시집은 창비시선의 앞날을 예감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농무>의 뒤를 이은 아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사평역에서>(곽재구), <섬진강>(김용택), <지울 수 없는 노래>(김정환) 등등. <국토>(조태일), <한국의 아이>(황명걸), <북치는 앉은뱅이>(양성우), <꽃샘추위>(이종욱) 등은 판매금지되었으며,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를 냈을 때는 당시 편집장이었던 이시영 시인이 당국에 연행당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50만부가 넘게 팔려나간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비롯해 <참된 시작>(박노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정호승) 등 10만부를 훌쩍 넘는 베스트셀러를 내기도 했다.
200호 기념 시선집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2000) 이후 9년 만에 나온 300호 기념시선집은 201번부터 299번까지 시집을 낸 시인 86명의 시 한 편씩을 골라 실었다. ‘사람과 삶’을 주제로 작품을 골랐다는 엮은이 박형준 시인은 “시인들 각자의 개성이 분명하면서도 ‘진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집마다 적어도 한 편씩은 들어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창비는 다음달 초 발간되는 창비시선 301호 <야생사과>(나희덕)부터는 판형을 조금 키우고 표지 디자인도 새롭게 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한편 창비시선 300번 시선집 출간을 기념해 20일 저녁 서울 홍대앞 KT&G상상마당에서는 독자들을 초대해 북콘서트를 열었다. 신경림·김사인·나희덕·문태준· 손택수 시인의 시 낭송과 문학 방담, 그리고 안치환·민설·반지 등 음악인들의 공연이 어우러졌다. 백낙청 창비 편집인은 인사말에서 “시가 이런 자리에서 노래와 함께하고 대중과 만나는 것은 귀한 일”이라면서 “세속의 말을 가다듬어서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준 시인들께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창비는 이날 북콘서트에 이어 24일 수원을 필두로 6월 하순까지 광주, 울산, 부산, 전주, 제주 등에서 시인 30~40명이 참여하는 전국 낭송회를 연다. 또 주요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는 대표시선 36종의 자필 사인본 판매 행사도 병행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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