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상가이자 <장미의 이름> 등 베스트셀러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 볼로냐대학 교수·기호학)가 1997년에 쓴 책 <칸트와 너구리>(열린책들 펴냄)는 ‘언어와 지각, 현실은 어떤 관련을 맺는가’라는 묵직한 철학 화두를 에코 특유의 이야기체로 풀어나간다. 범상치 않은 책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끈다. 그것은 에코가 던지는 화두에 어떻게 포섭돼 있을까.
오리너구리는 기이한 존재다. 오리도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다. 또 오리이며 너구리다. 1798년 오리너구리의 박제가 영국박물관에 처음 알려진 이래 여러 발견 사례들이 전해졌는데도 그것이 ‘난생 포유류’로 결정되기까지 무려 86년 동안 과학계조차 그 존재는 확신되지 못했다. 과학과 비과학의 모든 분류법을 좌절시키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유쾌한 지적 이야기꾼인 에코한테 이런 오리너구리는 사람의 인식과 분류, 언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둘도 없는 사례다. 이런 물음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던진 물음 ‘감관 자각의 다양이 어떻게 정신에 의해 인식으로 전환하는가’에 곧바로 이어진다. 에코는 서문에서 이 책의 기획을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은 무엇을 다루는가? 오리너구리, 고양이, 개, 생쥐, 말은 물론이고 걸상, 접시, 나무, 산과 우리가 매일 보는 다른 것들을 다룬다.…구별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룬다. 이것은 플라톤에서부터 현대의 인지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고를 괴롭혀 온 골치 아픈 철학적 문제로, 칸트조차 만족스럽게 거론한 적이 없으니 해결이 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제 내가 그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
에코가 동원하는 수많은 사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이론보다 사실이 승리함을 증명하며, 모든 말하기는 이미 대상에 대한 해석이고 의미는 사회적 합의와 협상 과정에서 생산된다고 주장하는, ‘독단의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외치는 에코를 발견하게 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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