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륭(65)씨의 소설집 <소설법(小說法)>이 현대문학에서 나왔다. 소설집으로는 <열명길>(1986) 이후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소설집이라고는 했지만, 작가가 작가니 만치 그것이 여느 소설집들과 판이하게 다름은 물론이다. 우선, 제목에 ‘소설’이 들어 있기는 한데, 그 뒤에 따라 붙은 ‘법’이 걸린다. 소설이면 그냥 소설이지 소설법은 또 무언가. 이 책이 무슨 창작 지침서나 평론서라도 된단 말인가. 게다가 ‘소설법’은 단순히 ‘소설, 법’인 것만도 아니어서, 그것은 또한 ‘소, 설법’ 그러니까 작은 설법을 뜻하기도 하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의 첫 작품인 <무소유(無所有)>에 대해 작가 스스로 각주를 통해 그것이 통상의 용법에서처럼 ‘소유하지 않음’에 더해 ‘무소, 유’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고 밝힌 것을 참조할 만하다.
게다가, 책에는 모두 9편의 ‘작품’이 실렸는데, 그 배치가 또 묘하다. 크게는 ‘내편’ ‘외편’ ‘잡편’의 셋으로 나누었고, 내편에 <무소유> <소설법> <역증가(逆增加)> 세 편이, 외편에 <잡상(雜想) 둘> <만상(漫想) 둘> <위상(爲想) 둘> <오상(誤想) 둘> 네 편이, 잡편에 <깃털이 성긴 늙은 백조(白鳥)/깃털이 성긴 어린 백조(白鳥)>와 두 편이 각각 포함됐다. 명백히 <장자>의 편제를 따른 것이다. <장자> 흉내내기는 내·외·잡편의 편 가름이 ‘내편=본론, 외편=각주, 잡편=각주에 대한 각주’의 성격을 지닌다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어쨌든 작가는 책 전체의 제목으로 ‘소설법’을 택했거니와, 그것은 말하자면 ‘소, 설법’과 ‘소설, 법’의 결합, 그러니까 철학·종교와 문학의 화해를 겨냥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책 말미에 해설을 쓴 김윤식씨는 이를 두고 “박상륭의 각설이타령의 정점이랄까 가장 최신품이자 도달점으로 보이는 장엄 화려한 글모음”이라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내편(본론) · 외편(각주) · 잡편 작품 배치 ‘장자’대로
철학 · 문학 · 종교 뒤얽혀 화해
“헝클어진 게 간추려질때까지 바위에다 머리 찍어라”
각오된 자 매력에 빠져보시라
다시 어쨌든, 책에 실린 아홉 편의 글 가운데 그나마 소설적인 이야기를 지닌 것은 역시 ‘내편’에 실린 세 작품 정도라 할 수 있다. <무소유>는 어부왕 전설을 소재로 삼은 것으로, 성적 불구자가 된 어부왕의 시동(侍童)이 왕의 환후를 고치고자 불사조를 찾아 길을 나선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법>은 기·승·전·결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그 각각은 ‘잠자는 공주’ ‘개구리왕자’ ‘금당나귀’ ‘아킬레스’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역증가>에서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카인을 내세워 윤회와 진화의 상관관계를 탐색한다.
이 세 편의 ‘본론’과 이들을 설명하는 각주 및 각주에 대한 각주를 두루 새겨 보면, 이 책에서 박상륭씨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진화의 다섯 번째 단계인 ‘판켄드리야’(오관유정, 五官有情)에 오른 인간이 이제 정신적인 차원으로 올라서느냐 다시 축생의 단계로 미끌어 떨어지느냐의 기로에 있다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보통의 독자에게 작가의 이런 문제의식은, 생경한 용어와 이질적인 어투와 더불어, 좀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난해함이야말로 박상륭 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가 될 텐데, <소설법>의 말미에 붙인 각주에서 작가 스스로 그에 대해 변명(?) 삼아 밝혀 놓은 부분이 흥미롭다: “일견, 삼거불보다 더 헝클어진 ?쇼?ㅣ 탓에, 공들 머리 많이 아프게도 됐다. 다른 약방문은 있을 듯하지도 않으니, 헝클어진 게 간추려져 시원해질 때까지, 공들은, 바위에다 머리통 찍어라.”(154쪽) 박상륭 소설의 심원한 주제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거나 그야말로 바위에 머리통을 찍으려는 보통의 독자들에게라면 그의 낯설고도 매력적인 문장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나가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작가가 스스로 고안한 어휘와 희한한 종결어미, 빈발하는 쉼표와 괄호, 그리고 철학과 종교, 신학 쪽의 전문용어와 시정잡배들의 거친 입말이 뒤섞인 혼란 속에서도 그의 소설 문장들은 전혀 뻑뻑하거나 삐걱거리지 않고 막히거나 비틀거리지도 않으며, 놀랍도록 리드미컬하게 읽힌다. 한 대목을 마지막으로 인용하거니와, 여기서 ‘패관(稗官)이란 작가 자신을 가리킴을 일러둔다. “헛헛헛, 패관은 유독 혀가 길어 패관질에 나선 잡스런 족속이라 하되, 말도 많았댔구나. 패관의, 마른 검불 같은 수염엔, 어느 동네 서당 개밥통이라도 핥다 그리 되었을, 말의 보리밥풀이 엉겨붙어, 그것만으로도 둬 끼니는 안 굶어도 좋겠다 싶은데, 그런즉, 그 염려일랑 둬 끼니쯤 미뤄두기로 해야겠는다. ”(96쪽)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철학 · 문학 · 종교 뒤얽혀 화해
“헝클어진 게 간추려질때까지 바위에다 머리 찍어라”
각오된 자 매력에 빠져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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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편의 ‘본론’과 이들을 설명하는 각주 및 각주에 대한 각주를 두루 새겨 보면, 이 책에서 박상륭씨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진화의 다섯 번째 단계인 ‘판켄드리야’(오관유정, 五官有情)에 오른 인간이 이제 정신적인 차원으로 올라서느냐 다시 축생의 단계로 미끌어 떨어지느냐의 기로에 있다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보통의 독자에게 작가의 이런 문제의식은, 생경한 용어와 이질적인 어투와 더불어, 좀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난해함이야말로 박상륭 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가 될 텐데, <소설법>의 말미에 붙인 각주에서 작가 스스로 그에 대해 변명(?) 삼아 밝혀 놓은 부분이 흥미롭다: “일견, 삼거불보다 더 헝클어진 ?쇼?ㅣ 탓에, 공들 머리 많이 아프게도 됐다. 다른 약방문은 있을 듯하지도 않으니, 헝클어진 게 간추려져 시원해질 때까지, 공들은, 바위에다 머리통 찍어라.”(154쪽) 박상륭 소설의 심원한 주제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거나 그야말로 바위에 머리통을 찍으려는 보통의 독자들에게라면 그의 낯설고도 매력적인 문장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나가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작가가 스스로 고안한 어휘와 희한한 종결어미, 빈발하는 쉼표와 괄호, 그리고 철학과 종교, 신학 쪽의 전문용어와 시정잡배들의 거친 입말이 뒤섞인 혼란 속에서도 그의 소설 문장들은 전혀 뻑뻑하거나 삐걱거리지 않고 막히거나 비틀거리지도 않으며, 놀랍도록 리드미컬하게 읽힌다. 한 대목을 마지막으로 인용하거니와, 여기서 ‘패관(稗官)이란 작가 자신을 가리킴을 일러둔다. “헛헛헛, 패관은 유독 혀가 길어 패관질에 나선 잡스런 족속이라 하되, 말도 많았댔구나. 패관의, 마른 검불 같은 수염엔, 어느 동네 서당 개밥통이라도 핥다 그리 되었을, 말의 보리밥풀이 엉겨붙어, 그것만으로도 둬 끼니는 안 굶어도 좋겠다 싶은데, 그런즉, 그 염려일랑 둬 끼니쯤 미뤄두기로 해야겠는다. ”(96쪽)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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