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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백설공주 괴롭히기’보다 ‘나’를 찾고 싶어

등록 2009-05-08 20:39수정 2009-05-08 20:41

〈백설공주와 마법사 모린〉
〈백설공주와 마법사 모린〉
학예회 연극이 돌연 마법 세상으로
주인공 된 왕비는 왕궁서 탈출하고
거울에 갇힌 누군가를 구해내는데…




〈백설공주와 마법사 모린〉
임태희 글·김령언 그림/사계절·8500원

“거울아, 너는 어쩌다 그 안에 갇히게 되었니?” 모든 마법은 우연한 주문으로 시작한다지만, 하필 이런 주문이라니. 연극에서 대사를 더듬거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거울에게 던진 질문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학예회 무대는 갑자기 백설 공주가 사는 나라, 파루시차 왕국으로 바뀐다. 왕비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던 모린은 진짜 백설 공주의 새어머니가 된 것이다.

물론 모린은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가”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처럼, 백설 공주에게 독사과를 먹일 생각은 없다. 대신 말 한마디만 나누어도 웃음기를 싹 가시게 하는 얼음 같은 파루시차 왕한테서 도망치기로 했다. 자기가 떠나면 말 한마디 건넬 사람 없는 거울을 등에 지고 성을 빠져나와 일곱 난쟁이가 사는 숲으로 간다. 또 잠시 왕비가 없다면 대체 백설 공주는 어떻게 왕자를 만날지 걱정도 했지만, 백설 공주에게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니까 행복해질 권리가 있잖아요. 당신 이야기는 당신 스스로 재미있게 만드세요”라고 당부하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는 쪽을 택했다.

‘백설공주 괴롭히기’보다 ‘나’를 찾고 싶어
‘백설공주 괴롭히기’보다 ‘나’를 찾고 싶어

144쪽 얇은 책의 분량만큼 거울의 비밀을 풀고, 왕국을 구해내는 마법 여행은 가파르지도 아슬아슬하지도 않다. 그런데 돌아서기에는 뭔가 마음에 걸린다. 왕궁을 벗어나자 갑자기 맥이 빠져서 왜 올해는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 마법사 그루토투는 어디로 갔는지, 중요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땀만 비질비질 흘리는 거울 때문이다. 왕비가 울부짖거나 말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백설 공주라고, 진실만을 말하는 차갑고 매끄러운 원래 동화 속 마법 거울보다는 시시때때로 두통에 시달리고 울상 짓는 미용 용도도 안 되는 이 불완전한 거울에 더 마음이 쓰인다. 애당초 남이 묻지 않는 것은 아예 알지 못하는 정물화 같은 거울에게 너는 누군지를 물으면서 이 마법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던가.

하필 거울을 통해 마법이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여자의 거울반사 능력에 대한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거울반사란 상대의 표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의 기분을 직관적으로 정확히 알아내는 능력이다. 이론대로라면 여자는 마법의 거울 따윈 필요없다. 신경세포와 촉수를 총동원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면 원하는 답을 얻게 될지어다. 작가는 실은 이 이야기를 <백설 공주와 마법사 모린>이 아니라 ‘모린과 백설 공주의 거울’이라고 이름 짓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불완전한 자존감으로 거울을 보는 여자도 있지만, 정체성을 얻기 위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거울 속 세상을 탐구하는 소녀도 있다. 현실로 돌아온 모린은 여전히 악역이 맡겨진 무대에 서 있지만, 괜찮아. 방금 거울에 갇힌 누군가를 끄집어 내는 모험을 끝냈잖아. 그런데 거울 속에서 나온 것은 누구?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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