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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5월 23일 잠깐독서

등록 2009-05-22 21:41수정 2009-05-22 21:43

〈보노보 찬가〉
〈보노보 찬가〉




한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는 길

〈보노보 찬가〉

한국은 침팬지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정글이다. 상명하복,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원리가 작동한다. “이민을 가고 싶다”는 푸념이 이어진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정글자본주의를 파헤치며, 한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는 길을 고민했다. 침팬지가 판치고, ‘시장주의 탈레반’이 날뛰는 세상은 오래갈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1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한다. “정부의 명령이 물리력으로 관철되는 사회, 노동을 배제하고 복지를 방기하며 이윤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알바 청소년은 현대판 노예로 살아간다. 이주노동자는 “때리지 마세요”를 먼저 배우고, 열다섯 소녀가장은 생활고에 목을 맨다.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의 대기업 운영자는 집행유예 비율이 83%에 이른다. 정글을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이윤 추구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계층·집단이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진보진영은 20 대 80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다수에게 승리의 경험과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시민의 생명권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 “촛불에 대한 보복을 멈춰라” “간통에 대한 주홍글씨의 낙인을 거두어라” “때리는 교육은 학생들의 미래를 괴물로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담았다.

‘난쟁이 침팬지’로 알려진 보노보는 수직적 서열이 없는 평등한 문화를 유지하며 약자를 끌어안는다. “이제 우리 속에 움츠린 보노보를 찾아, 즐거운 어울림과 신나는 연대가 필요하다.” /생각의나무·1만1000원.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인문학, 악착같이 즐겁게 읽자

〈로쟈의 인문학 서재〉
〈로쟈의 인문학 서재〉
〈로쟈의 인문학 서재〉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 ‘학이’ 편의 첫 구절이다. 이 고전적인 금언을 웹2.0 시대에 맞게 온몸으로 즐기고 확장하는 사람이 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블로그를 꾸리고 있는 이현우씨다. 인문학 독자들에게 ‘로쟈’는 이미 전설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는 칸트, 니체, 베냐민, 루카치, 롤랑 바르트, 데리다, 들뢰즈, 지젝 같은 사상가에서부터 쿠스투리차, 레오 카락스, 김기덕, 황혜선 같은 예술가들까지 다 모여든다. ‘곁다리 인문학자’를 자칭하는 그는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전방위 지식과 경쾌한 문체로 인문학의 세계를 종횡무진한다. 동네 미용실 안의 풍경에서 라캉의 ‘상상계-상징계-실재’를 읽어내는 솜씨는 예술이다. 니체의 마초주의와 니힐리즘에 붙은 오해도 유쾌하게 전복된다. 그의 ‘저공비행’에 편승해 인문학의 드넓은 숲을 조망하는 재미는 그야말로 짜릿하다. 이 짜릿함은 저항과 탈주의 쾌락이며, 책읽기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동시에 내장된 향락이다. 책에 실린 대다수 글들은 “다른 텍스트 읽기에 기대어 생산된 텍스트”들이다. 숲길이 보이고 갈래가 보인다 싶어 나무들까지 들여다보고 싶어질 즈음이면, 아득한 심연에 두려움이 싹틀지도 모른다. 겁낼 건 없다.

지은이는 “책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악착같이 즐겁게 읽을 필요가 있”으며, “이런 종류의 글을 너무 쉽거나 말랑말랑하게 느끼는 독자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주의점 한 가지. 항로를 벗어나거나 불시착하지 않으려면, 무지와 불성실로 점철된 인문학 번역에 대한 지은이의 개탄도 유념하시라. /산책자·1만5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고흐의 편지 125통 들여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난 비록 가끔은 너무나 비참하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있어. 나는 가장 가난한 오두막, 가장 더러운 구석에서 유화나 소묘를 발견해. 내 마음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런 것에 이끌려.”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 짧은 생애 동안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편지를 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는 현재 남아 있는 편지 909통 가운데 125통을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옮기고 해설을 붙인 것이다. 중학교 때 고흐의 전기를 읽은 뒤 그의 그림뿐 아니라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는 지은이 박홍규 교수(영남대)가 <내 친구 빈센트>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에 이어 고흐에 대한 사랑을 담아 엮은 책이다.

편지에는 화랑에서 일하며 자연과 예술에 흠뻑 빠져 보낸 행복했던 젊은 시절부터 죽음에 가까워져 찬찬히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느꼈을 잠깐의 연민까지 생생히 녹아 있다. 정규교육을 4년 정도밖에 받지 못했지만 평생 독서로 쌓은 지성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로 다져진 그의 글은 단단하다.

“나 자신 힘든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꽤나 빨리 늙어버렸어. … 나는 그림을 그린다는, 더럽고 힘든 일을 하고 있어. 내가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면, 그림 따위 그리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게 너무 좋고, 비록 내 젊음은 잃어버렸지만 젊음과 신선함이 있는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어서 행복하구나.” /아트북스·2만6000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책 메뉴판’ 보고 식성 따라 읽어봐

〈죽도록 책만 읽는〉
〈죽도록 책만 읽는〉
〈죽도록 책만 읽는〉

출간되는 책은 많고 읽을 시간은 없다. 좋은 책만 골라 읽기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유용한 방법이 ‘죽도록 책만 읽는’ 믿을 만한 독자로부터 정보와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도서평론가 이권우씨의 네 번째 서평집 <죽도록 책만 읽는>에는 110권의 책에 대한 독후감이 빼곡히 실려 있다. 짧게는 두 쪽, 길어도 일곱 쪽을 넘지 않는 각각의 서평이 짬짬이 펼쳐 읽기 좋다. 글의 내용 역시 책에 대한 기본 정보와 함께 ‘죽도록 책만 읽’으면서 공력을 쌓은 이의 얕지 않은 사유와 통찰이 적절하게 배합돼 있어 단순한 가이드북 이상의 읽는 즐거움을 준다.

글의 재미와 수준 못지않게 보편적인 독자들을 배려한 부분은 소설에서 자서전, 인문학, 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진 목차의 갈래와 각각의 갈래를 구성하는 책 목록들이다. 에릭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처럼 관심은 있어도 읽을 엄두가 안 나는 고전 서평들이 일종의 ‘대리 독서’ 만족을 주는 한편,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나 야마다 에이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처럼 신문의 서평란들이 놓쳤거나 버리고 간 책들의 서평은 쏠쏠한 정보가 된다. <30분에 읽는 융>처럼 ‘초보자’들을 위한 추천이 있는가 하면 지적 호기심이 강한 독자들에게는 자서전을 읽을 때 님 웨일스, 에드거 스노, 리영희의 순으로 읽기를 권할 만큼 폭넓은 책읽기의 기록이다. 이 책 한권만 읽어도 어디 가서 지적인 대화에서 영 소외될 불안감은 떨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더 좋은 건 서점에 달려가 지은이와 동시에 눈이 맞은 책을 사서 읽는 일일 터이다. /연암서가·1만2000원.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성경을 ‘우리 이야기’로 바꾸라

〈삶에 적용하는 구약〉
〈삶에 적용하는 구약〉
〈삶에 적용하는 구약〉

김중기 새사람선교회 책임목사가 30년 동안 진행해온 ‘성경 공부’ 내용을 추려 <삶에 적용하는 구약>이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책에는 연세대 신과대학장과 부총장을 지낸 학자이자 ‘새사람운동’을 주도하는 선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이기도 한 김 목사의 신학관과 목회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김 목사가 1980년 한남동 한 가정에서 일곱 쌍의 부부와 시작한 성경 공부는 올해로 30년째를 맞으면서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쳐간 넓은 신앙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이 30년의 세월의 성경 공부 테이프 중 고갱이를 풀어쓴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곳, 우리의 삶’이다. 김 목사는 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태초’를 “개개인이 새사람이 된 시점”으로 해석하고, ‘창조’의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현재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사명과 목적이 있음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하늘나라’를 얘기할 때도 “하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목표에 소홀할 경우, 그 결과는 하늘나라에까지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하는 등 언제나 시작과 끝을 ‘이곳’에 두고 있다. ‘이곳’에 대한 강조는 김 목사가 굳이 성경공부 테이프를 다시 풀어쓴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애초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글자가 없었던 시절, 성경 속 이야기는 누군가의 ‘절실한 이야기’를 또다른 누군가가 전달하면서 이어져왔다. 그 이야기 속에서는 당시 이스라엘 민중들의 생활상이 짙게 드리워 있을 것인데, 김 목사는 ‘그 이야기’를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바꿀 때 진실성이 더욱 짙어진다고 믿는 듯하다. /두란노·1만5000원.

김보근 기자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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