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순(51)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
‘종묘의궤’ 완역한 선종순 위원
사라진 왕실용어·당대 쟁론 살려
“종묘는 통치이념 집약 국가성지”
사라진 왕실용어·당대 쟁론 살려
“종묘는 통치이념 집약 국가성지”
〈종묘의궤 1·2〉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선종순 옮김/김영사·각 권 2만8000원 “의궤(儀軌)라 하면 의식·행사에 관한 매뉴얼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 책은 달라요. 국가의 예제(禮制)를 둘러싼 정치 갈등, 그 안에 담긴 권력관계와 사상사적 함의까지도 엿볼 수 있으니까요.” <종묘의궤>를 완역한 선종순(51·사진)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은 “하루 10시간씩 꼬박 1년을 도 닦는 자세로 매달렸다”고 했다. 지금은 사라진 왕실 의례용어와 제복·음악·제기와 관련된 전문용어가 낯설기도 했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복위(復位·폐위됐던 왕의 신위를 다시 모심)나 추숭(追崇·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자를 임금으로 칭함)과 관련된 당대의 쟁론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었다. <종묘의궤>가 대체 어떤 책이기에 30년 넘게 연구와 번역으로 단련된 한문의 달인을, 구도에 가까운 노동의 모진 수렁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종묘가 어떤 곳입니까.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곳입니다. 유교적 예의 명분을 이념 삼아 수립된 왕조국가 조선이었으니, 예의 핵심인 효를 실행하는 왕실공간 종묘는 사실상 통치 이데올로기가 물질화된 국가 성지였던 셈이지요.”
<종묘의궤>는 바로 종묘에서 행해지던 제도와 의식 절차, 관련 행사를 그림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왕이 죽었을 때 계모인 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피 튀기는 정쟁을 벌이던 시절이었으니, 예의 실행 과정에서 빚어지는 분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엄격하게 제도화된 행사 매뉴얼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록물의 왕국’ 조선에는 이런 의궤가 637종이나 만들어졌다. 왕릉 수리나 잔치 등 왕실 행사뿐 아니라 실록을 발간하던 국가기관의 업무절차를 기록해놓은 것도 있다. 그런데 <종묘의궤>는 종묘에서 벌어지는 행사의 과정과 절차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왕실과 조정의 논의들까지 담고 있는 게 특징이다. 2권의 추숭 편을 보자. 조선 인조 9년(1631년) 음력 12월의 일로, 왕이 국가의 제례를 관장하는 예조에 하명한다.
“성인의 효는 부모를 높이는 것을 훌륭하게 여기고 군주의 다스림은 효도와 공경을 우선으로 삼으니, 고묘(考廟·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의 사당)를 오래도록 누추한 여염에 둘 수 없고 종묘의 예위(아버지의 신주)가 길이 빈 신실로 되는 것도 안 될 것이다.(…)우리나라의 이전 규례를 제멋대로 하는 논의에 구애되어 결단하지 못한다면, 아버지를 잊고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하였다는 비난이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높여 윤리를 펴고 효도를 다하여 예에 맞게 하는 것이 오로지 추숭에 달려 있다.”(2권 79쪽)
이 대목과 관련된 선 위원의 설명은 이렇다. 인조는 삼촌인 광해군을 내쫓고 왕이 됐는데, 친아버지는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원군이다. 쿠데타를 통해 즉위한 까닭에 정통성이 취약했던 인조로선 서출의 왕자 신분으로 죽은 생부를 왕으로 높임으로써 자신이 왕실의 적통임을 공인받고 싶었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종묘에 할아버지(선조) 신주는 있는데, 아버지 신주가 없다는 것은 효를 중시하는 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목숨 걸고 자신을 왕에 추대했던 공신들의 반발이 거세다. 그들은 ‘왕실의 전통은 사가의 전통과 다르니 선조가 비록 할아버지지만, 왕통으로는 아버지가 된다’며 맞선다. 왕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공신 집단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인데 인조 또한 녹록잖다. “당장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예조의 의견에 사소한 표현을 문제 삼으며 “추고해야 마땅하나 오늘은 그냥 두겠다. 후에는 이렇게 무식한 말은 하지 말라”(2권 83쪽)며 엄포를 놓는다.
“사극의 한 장면 같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귀라는 공신이 인조 편에 서서 최명길 등 예조의 추숭 반대파를 맹공합니다. 그런데 한자의 특성상 말이 논리적이지 않으면 글로 옮기기 쉽지 않아요. 이귀의 말은 감정적인데다 장광설인지라 한자로 옮겨놓은 원문이 대체 무슨 뜻인지 감을 잡기 어렵더군요.” <종묘의궤>에는 이 밖에도 문화산업적 가치가 뛰어난 콘텐츠들이 무궁무진하다. 제례에 동원되는 의복과 제기, 악기 등의 모양과 치수가 172점의 세밀화로 표현돼 있을 뿐 아니라 의식의 세부적인 동작과 동선까지 묘사돼 있다. 2003년부터 의궤 번역을 추진해온 고전번역원은 모든 의궤를 집대성한 <의궤총간>을 발간한 뒤 주요 문서를 선별해 우리말로 출간할 계획이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선종순 옮김/김영사·각 권 2만8000원 “의궤(儀軌)라 하면 의식·행사에 관한 매뉴얼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 책은 달라요. 국가의 예제(禮制)를 둘러싼 정치 갈등, 그 안에 담긴 권력관계와 사상사적 함의까지도 엿볼 수 있으니까요.” <종묘의궤>를 완역한 선종순(51·사진)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은 “하루 10시간씩 꼬박 1년을 도 닦는 자세로 매달렸다”고 했다. 지금은 사라진 왕실 의례용어와 제복·음악·제기와 관련된 전문용어가 낯설기도 했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복위(復位·폐위됐던 왕의 신위를 다시 모심)나 추숭(追崇·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자를 임금으로 칭함)과 관련된 당대의 쟁론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었다. <종묘의궤>가 대체 어떤 책이기에 30년 넘게 연구와 번역으로 단련된 한문의 달인을, 구도에 가까운 노동의 모진 수렁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종묘의궤 1·2〉
“사극의 한 장면 같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귀라는 공신이 인조 편에 서서 최명길 등 예조의 추숭 반대파를 맹공합니다. 그런데 한자의 특성상 말이 논리적이지 않으면 글로 옮기기 쉽지 않아요. 이귀의 말은 감정적인데다 장광설인지라 한자로 옮겨놓은 원문이 대체 무슨 뜻인지 감을 잡기 어렵더군요.” <종묘의궤>에는 이 밖에도 문화산업적 가치가 뛰어난 콘텐츠들이 무궁무진하다. 제례에 동원되는 의복과 제기, 악기 등의 모양과 치수가 172점의 세밀화로 표현돼 있을 뿐 아니라 의식의 세부적인 동작과 동선까지 묘사돼 있다. 2003년부터 의궤 번역을 추진해온 고전번역원은 모든 의궤를 집대성한 <의궤총간>을 발간한 뒤 주요 문서를 선별해 우리말로 출간할 계획이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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