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노는 비닐봉지야, 너도 외롭구나”
동양화 같은 그림·짤막한 글
풀과 꽃 생생한 속삭임 담아
풀과 꽃 생생한 속삭임 담아
〈비닐봉지풀〉
방미진 글·오승민 그림/느림보·9800원 어린이 책에 어린이가 보이질 않는다. 이 그림책이 이상한 것은 그뿐만 아니다. 알록달록 색대궐은커녕 빨간색도 파란색도 없고 사람이나 자동차는 물론 동물도 없다. 구깃구깃 접힌 까만 비닐봉지와 28쪽, 열네 가지 그림 사이를 떠다니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비닐봉지풀>은 어느 심심한 오후에 혼자 노는 아이가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를 쫓아가는 이야기다. “비닐봉지는 혼자서 놀아.” 첫 장에 가슴이 저린 사람은 외톨이 아이일까, 아니면 모든 생명체가 외톨이로 살아가는 세상에 아이를 낳아버린 부모일까.
작가가 2년 전 이 책을 시작할 때 쓴 작업스케치를 보면, 짝지어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둘이 노는 은행알, 지들끼리 쏙닥거리는 꽃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아이의 외로운 모습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완성된 책에서는 그마저도 빼버렸다. 전작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 <금이 간 거울> 등에서 아이의 외딴 심정을 절실하게 그려온 작가 방미진씨는 이 책에선 일체를 생략해 버린다. 책 앞뒷면에 아이의 뒷모습이 잠깐 나올 뿐, 몇 안 되는 글줄마저도 책장마다 외롭게 서성인다.
유일하게 수다스러운 것은 비닐봉지와 함께 춤추는 풀들이다. 화가 오승민씨는 풀들이 살아 손짓하는 느낌을 얻기 위해 일일이 풀 하나하나를 따로 그려 컴퓨터로 겹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외로운 아이만이 풀들이 저마다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들여다볼 줄 알기 때문일까. 그리고 이야기의 틀 속에 우주를 들여놓는 대신 책의 대부분은 여백이다.
“풀들이 속을 줄 알았나봐. 뿌리도 없으면서.” 내쳐진 비닐봉지처럼 아이들도 안다. 친구가 많든 형제가 있든 비어버린 세상에서 아이들은 혼자다. <비닐봉지풀>은 동화책답게 삼라만상이 말을 걸고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않는다. 외로운 아이들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전략을 취한다. ‘심심하냐’는 말처럼 부적절한 질문이 어디 있을까. 외로움에 대한 대화란 혼자 집을 보는 날 외롭게 방바닥에 내려꽂히던 햇살을 만지작거리던 경험을 나누는 대화가 아니겠는가. 7살 이상.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방미진 글·오승민 그림/느림보·9800원 어린이 책에 어린이가 보이질 않는다. 이 그림책이 이상한 것은 그뿐만 아니다. 알록달록 색대궐은커녕 빨간색도 파란색도 없고 사람이나 자동차는 물론 동물도 없다. 구깃구깃 접힌 까만 비닐봉지와 28쪽, 열네 가지 그림 사이를 떠다니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비닐봉지풀〉
“혼자 노는 비닐봉지야, 너도 외롭구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