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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피고름 찌그러진 손 나도 만질 수 있을까

등록 2009-07-17 19:26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
한센병 환자와 43년 한몸살이…두 외국인 수녀의 삶 그려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
강무홍 글·장호 그림/웅진주니어·9500원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는 셋을 이르지만 뜻은 하나다. 각각 1962년과 64년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와 마가렛 피사레크 수녀가 작은 손가방 하나 들고 소록도를 찾아왔던 그날부터 43년 동안 소록도와 두 수녀는 한몸이었다.

한상기·장기려·윤석남 등 우리 사회에 빛을 남긴 근현대 인물 이야기를 전하는 ‘웅진주니어 인물그림책 시리즈’ 네 번째 권으로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가 나왔다. 40년 넘게 소록도 병원과 영아원을 돌보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삶을 담은 인물 그림책이다. 소록도라니. 우리는 전남 고흥반도에서 고작 600m 떨어진 섬을 집단적으로 지워버렸다. 환자를 ‘단종’해야 한다며 수술대 위에 올려 마취도 없이 불임수술을 하는 잔학행위에 눈감고 귀막도록 했다. 이 책을 쓴 강무홍 작가는 소록도 취재를 다녀와서 “한국에선 어딘가 약점을 지닌 사람은 죄인일 뿐이라는 새삼스런 발견에 몸서리를 쳤다”고 한다. 한국인이 버린 사람들을 보듬은 두 외국인 수녀의 삶을 통해 “멀쩡한 사람끼리만 살라고 소수자를 격리하는 사회에 사는 아이들에게 약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피고름 찌그러진 손 나도 만질 수 있을까
피고름 찌그러진 손 나도 만질 수 있을까

소록도 사람들에게 ‘큰할매 작은할매’는 편견과 격리의 벽을 넘어 처음으로 닿았던 따뜻한 체온을 이르는 말이다.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졌다.” 소록도를 지키고 있는 노인들은 아직도 두 수녀가 맨손으로 환자들의 피고름을 짜주던 일을 놀라움을 섞어 되새기곤 한다고 했다.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낸 <소록도 80년사>에선 그런 장면을 본 직원들이 처음으로 환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고도 적혀 있다.

‘소록도 큰할매 작은할매’는 그림책에서도 한몸이다. 이 책에선 큰할매 마리안느와 작은할매 마가렛만큼이나 소록도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한센병을 앓다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된 요셉이 깊은 좌절에 잠겼다가 다른 환자들을 버팀목 삼아 다시 희망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이야기가 두 수녀가 소록도에 바친 청춘과 수행의 나날을 대신한다. 사랑은 일체를 꿈꾸는 것. 남에게 봉사하는 사랑이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2005년 11월 “이젠 나이 들어서 짐이 될 수 있다”며 홀연히 새벽에 소록도를 떠날 때까지 정말이지 기쁘고 행복하게 소록도에서 살았다던 두 수녀의 삶이 이를 방증한다. 환자들이 “할매는 지겹지도 않냐” 퉁사발을 놓으면 늘 “이렇게 도울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답하던 모습만 소록도 주민들의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림책 말미에는 소록도 역사와 수녀들의 삶을 자세하게 전한다. <달은 어디에 떠 있니?> <나비잠>을 그린 장호 화가가 수없는 연필선을 그어 목탄화 같은 느낌을 자아내며 주름지고 일그러진 한센환자들의 모습을 따뜻하고 정감 있게 그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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