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민규
박민규 네번째 장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못생긴 그녀’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랑…
“99%가 1% 위해 사는 건 부끄럼·부러움 탓”
‘못생긴 그녀’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랑…
“99%가 1% 위해 사는 건 부끄럼·부러움 탓”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랑’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작가 박민규(사진)씨는 그렇다고 답한다. 자신의 네 번째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에서다.
이 소설은 단순하면서도 까다로운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질문이다. 소설 주인공인 ‘나’는 열아홉 푸른 나이에 백화점 지하주차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같은 백화점에 근무하는 못생긴 ‘그녀’와 마주친다. 그리고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82~3쪽)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동갑내기인 ‘그녀’에게 급속히 빠져든다. 그런 ‘나’인즉 백화점의 여직원들끼리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미스터 알바’로 뽑힐 정도로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다.
어이없고 작위적인 설정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에이, 아무려면’이라며 항의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파격적인 선택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그의 가족사를 곁들인다. 잘생긴 배우 아버지와 그를 뒷바라지하다가 결국 버림받고 만 추녀 어머니. “아마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미남이었고, 어머니는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던 삼류 배우가 발견한 최고의 숙주였을 것이다.”(49쪽)
그런 가족사적 배경이 ‘나’의 선택을 설명해 준다고 해도 문제는 또 남는다. ‘그녀’로서는 ‘나’의 관심과 접근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불쌍한 그 여자에게 남자들이 말을 걸거나 관심을 표한 경우란 다만 놀리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게 경험에서 우러난 그 여자의 판단이다. ‘나’의 진심이 ‘그녀’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있었던 것이다.
‘나’와 함께 지하주차장 4층을 맡고 있는 연상의 청년 ‘요한’이 그 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쟤는 진심이야”(140쪽)라는 말로 ‘그녀’의 경계를 푸는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과 함께 ‘독신자 클럽’을 결성해 젊은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어울릴 수 있도록 한다.
소설 속에서 요한은 ‘나’의 멘토이자 도플갱어(분신)로 구실한다. 둘 사이에 친분이 쌓인 뒤 술을 마시면서 요한이 털어놓은바, 그의 어머니는 미모의 여배우였으나 지금 그들이 근무하는 백화점 회장의 애인이 되어 요한을 낳고 살다가 회장에게 버림받자 자살하고 만다. “요한이 나와 대척점에 선 인간이자, 마치 이복형제와 같은 존재란 생각”(150쪽)은 그들 사이의 기묘한 유대를 설명해 준다.
요한 덕분에 ‘나’와 ‘그녀’는 보통의 청춘 남녀처럼 데이트를 즐기며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 쪽의 튀는 외모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사랑을 특별한 어떤 것으로 만든다. 여자는 수시로 “저랑 같이 있는 게 부끄럽지 않았나요?”(205쪽)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어쩐지 ‘나’에게서 달아날 궁리만 하는 것 같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수치와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태도가 ‘나’는 안타깝기만 하다. 아름다움과 부와 권력을 거머쥔 소수 앞에 다수가 경배하고 복종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은 ‘나’의 사랑이 놓인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 우러나온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174쪽)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핑퐁>으로 이어지는 박민규 소설의 기조를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한의 자살 기도와 ‘나’의 버스 전복 사고가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이야기는 크게 요동을 치는데, 말미에 붙여 놓은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은 영화 <식스센스>를 연상케 하는 반전으로 독자의 허를 찌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 박민규씨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이 그림 오른쪽에 나오는 못생긴 여자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핑퐁>으로 이어지는 박민규 소설의 기조를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한의 자살 기도와 ‘나’의 버스 전복 사고가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이야기는 크게 요동을 치는데, 말미에 붙여 놓은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은 영화 <식스센스>를 연상케 하는 반전으로 독자의 허를 찌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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