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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국 키워낸 뽕나무, 한국농촌도 살릴까

등록 2009-07-24 19:43

비단옷을 입은 중국 남녀가 수작을 벌이는 모습을 담은 그림. 뽕나무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본 책 〈중국을 낳은 뽕나무〉가 나왔다.
비단옷을 입은 중국 남녀가 수작을 벌이는 모습을 담은 그림. 뽕나무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본 책 〈중국을 낳은 뽕나무〉가 나왔다.
옛 중국 서양과 비단 무역으로 최강국
뽕나무 많던 항저우는 자본주의 진원
china 명칭도 비단 관련 cina서 비롯돼
토양청정 지표 뽕나무서 농촌 미래 봐
〈중국을 낳은 뽕나무〉 강판권 지음/글항아리·1만9800원

중국의 영어 이름 ‘차이나’(China)는 흔히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말청초 예수교 선교사의 불확실한 주장이 그릇된 ‘상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진이 등장하기 전부터 페르시아와 인도에서는 중국을 비단 생산과 관련 있는 ‘진’(Cin)이나 ‘지나’(Cina)로 불렀다.

〈중국을 낳은 뽕나무〉
〈중국을 낳은 뽕나무〉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의 저서 <중국을 낳은 뽕나무>는 “뽕나무가 중국을 낳았다”는 주장을 다각도로 입증하고자 한다. 누에의 먹이로서 비단을 생산하는 원료가 되는 뽕나무가 중국 경제의 기반이 되고 문화를 발달시켰으며 정치 체제를 뒷받침하고 대외 관계의 윤활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뽕나무를 모르는 자가 중국사를 말한다면, 그건 <시경>을 모르면서 중국 고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강 교수는 단언한다.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길러 비단을 얻는 잠상업 기술을 중국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독점해 왔다. 중국의 양잠은 신석기 시대에 출현해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국가 기반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 최초의 시가집이자 ‘세계 최고(最古)의 식물 백과사전’인 <시경>에는 305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이 가운데 135편에 식물이 등장한다. 특히 뽕나무는 모두 20수에서 31번 언급됨으로써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식물의 영예를 차지한다.

<맹자>에는 “5무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는 말이 글자 하나 바뀌지 않고 두 번이나 등장한다. 뽕나무가 당시 가정 경제의 버팀목이자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매개체였음을 알 수 있다. ‘상전벽해’니 ‘잠식’처럼 뽕나무나 누에와 관련된 관용구들 역시 잠상이 옛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하게 한다.

1972년 발굴이 시작되어 중국 고고학계를 흥분시킨 마왕퇴의 무덤은 중국 고대 비단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의복뿐만 아니라 허리띠와 향주머니, 거울싸개, 베개, 신발 등에도 정밀한 직조기술을 자랑하는 비단이 쓰였다. 비단은 신분별·계급별 차이를 핵심으로 하는 의관제도를 성립시켰다. 중국과 이웃한 유목 민족들에서도 지배층은 일반 백성의 가죽옷과 차별화하기 위해 비단옷을 필요로 했다.

중국과 서역 사이의 최초의 교역 상품 역시 비단이었다. ‘비단길’이라는 말이 그 사실을 웅변한다. 중국의 비단을 최초로 서양에 전한 것은 유목 민족인 흉노였다. 로마의 귀족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중국산 비단으로 몸을 감싸길 좋아했다. 18세기 이전까지 비단은 가장 매력적인 대외 무역 상품이었다. “1603년 중국 생사를 실은 포르투갈 범선이 네덜란드에 압류되어 암스테르담에서 화물을 경매하자 유럽 각지의 상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을 정도였다.”


대외 무역뿐만 아니라 중국 내의 경제와 문화 발달에서도 비단은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중국의 잠상은 황하 북부 유역에서 출현해서 점차 남쪽으로 내려왔다. 수나라 때까지만 해도 북쪽이 비단 생산의 중심지였으나 당나라 후기 이후 남쪽으로 중심지가 바뀐다. 이에 따라 양자강 이북의 차지였던 중국의 경제 1번지 역시 강남으로 옮겨 오게 된다.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총길이 1800㎞의 경항대운하는 남쪽의 비단을 북쪽으로 올려보내려는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명청 시대의 항저우와 쑤저우는 중국 자본주의의 진원지 구실을 했는데, 그 가장 큰 배경은 뽕나무였다. 비단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은 강남의 부자들 사이에 극도의 사치와 환락을 가능하게 했다.

“진한시대부터 완비되어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지탱해 온 법가의 엄격함은 에로스의 일탈과 해방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법가와 유가의 엄격함, 도가와 불가의 소탈함, 그리고 사치와 향락의 도시문화 사이에는 비단이라는 얇은 차양막이 쳐져 있었다.”

이렇게 뽕나무를 중심으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죽어 가는 우리 농촌을 살릴 길 역시 뽕나무에 있다고 강조한다. 뽕나무는 토양의 청정도를 가리키는 지표와도 같다. 뽕나무가 있는 땅은 살아 숨쉬는 땅이다. 병든 현대 문명에 찌든 도시인들이 찾아갈 곳은 생명이 살아 숨쉬는 농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농촌 마을에 한 그루의 뽕나무가 자라는 한, 한국 농촌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게 강 교수의 결론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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