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소설 〈신엘로이즈〉의 여주인공 쥘리의 죽음을 그린 판화(왼쪽)와 리처드슨의 소설 〈파멜라〉의 한 장면을 담은 판화. 18세기의 서한소설들은 독자들 사이에 공감의 능력을 높임으로써 인권 개념의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돌베개 제공
독자 열광시킨 소설 속 인물
사랑·이별·시련·고난을 보고
타인의 아픔, 제것처럼 공감
인권은 그렇게 싹트고 퍼졌다
사랑·이별·시련·고난을 보고
타인의 아픔, 제것처럼 공감
인권은 그렇게 싹트고 퍼졌다
〈인권의 발명〉
린 헌트 지음·전진성 옮김/돌베개·1만6000원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근대유럽사학 교수 린 헌트는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와 같은 저작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신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다. 새로 번역된 그의 2007년 작 <인권의 발명>은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근대적 인권 개념의 출현과 정착, 그리고 확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지은이는 인권 개념을 성립시키는 세 가지 요건으로 자연성, 평등성, 보편성을 들며, 이 셋을 두루 충족시킨 최초의 권리 선언이 미국 ‘독립선언’(1776)과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이라고 본다. 지은이의 관심사는 이 최초의 선언들이 출현한 배경, 특히 어떻게 해서 18세기 사람들에게 권리의 평등이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여졌는지에 집중된다. “노예제와 대인 종속, 그리고 자연법칙처럼 보이는 굴종에 기반한 사회에 살던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그들과는 다른 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상상하게 되었는가?”(23쪽)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이 18세기 유럽 독자들 사이에 크게 유행한 서간체 소설들이다.
1762년에 낸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의 권리’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계몽주의 지식인 루소가 <신엘로이즈>(1761)라는 베스트셀러 연애소설의 작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루소는 당시 자신의 경쟁자였던 영국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의 소설 <클라리사>(1747~8)가 <신엘로이즈> 다음으로는 최고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두 소설과 함께 리처드슨의 처녀작이자 서구 근대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파멜라>(1740)는 젊은 여성 주인공의 사랑과 이별, 시련과 고난을 실감나게 그림으로써 유럽 독자들을 열광시켰다(물론 <파멜라>와 <신엘로이즈>를 금서 목록에 올린 교황청의 조처에서 보듯 이런 소설의 출현과 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도 없지 않았다).
“저는 여태 그토록 달콤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은 너무나 강렬한 효과를 불러일으킨 나머지 절정의 순간에는 그만 행복하게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57쪽)
<신엘로이즈>를 읽은 어느 퇴역 장성이 루소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18세기 연애소설 독자들의 반응을 짐작하게 해 준다. 린 헌트 교수는 독자들의 이런 반응이 ‘공감’(empathy)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허구적이긴 해도, 드라마에서만은 현재적이며 친숙하고 평범한 등장인물들과 자신을 조금이나마 동일시함으로써 비로소 평등을 배우게 된다.”(69쪽)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타인의 아픔을 제 것처럼 함께 아파하는 공감의 능력이 인권 개념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인권의 발명>은 이어서 실내 건축에서의 사생활 중시 추세, 음악과 연극 등 공연 관람 에티켓의 정착, 초상화의 유행 같은 문화적 변화 속에서 ‘신체의 개인화’ 현상을 포착하고, 그것이 18세기까지만 해도 만연했던 범죄 혐의자에 대한 고문을 불법화하는 입법 행위로 이어졌음을 밝힌다.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의 1789년 선언 공포 등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18세기 인권 개념의 확산과 심화를 가져왔다. 최초의 선언들에서 배제되었거나 모호하게 다루어졌던 소수자들(유대인, 여성, 노예 등) 역시 인권 개념의 수혜 대상으로 포섭해 들이던 긍정적 추세는 그러나 19세기 이후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등의 역풍을 맞아 오히려 퇴보를 거듭하다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뒤에야 유엔이 선포한 ‘세계 인권 선언’(1948)으로 힘겨운 결실을 맺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인권 선언’으로 인권에 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전 세계에는 2700만 명의 노예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차별과 고문, 감시와 억압은 도처에서 교묘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인권 상황은 이 정부 들어 갈수록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통찰에 기대어 말해 보자면, 저들에게는 공감의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인권의 의미를 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불의를 겪을 때 당신은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245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린 헌트 지음·전진성 옮김/돌베개·1만6000원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근대유럽사학 교수 린 헌트는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와 같은 저작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신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다. 새로 번역된 그의 2007년 작 <인권의 발명>은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근대적 인권 개념의 출현과 정착, 그리고 확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지은이는 인권 개념을 성립시키는 세 가지 요건으로 자연성, 평등성, 보편성을 들며, 이 셋을 두루 충족시킨 최초의 권리 선언이 미국 ‘독립선언’(1776)과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이라고 본다. 지은이의 관심사는 이 최초의 선언들이 출현한 배경, 특히 어떻게 해서 18세기 사람들에게 권리의 평등이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여졌는지에 집중된다. “노예제와 대인 종속, 그리고 자연법칙처럼 보이는 굴종에 기반한 사회에 살던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그들과는 다른 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상상하게 되었는가?”(23쪽)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이 18세기 유럽 독자들 사이에 크게 유행한 서간체 소설들이다.
〈인권의 발명〉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의 1789년 선언 공포 등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18세기 인권 개념의 확산과 심화를 가져왔다. 최초의 선언들에서 배제되었거나 모호하게 다루어졌던 소수자들(유대인, 여성, 노예 등) 역시 인권 개념의 수혜 대상으로 포섭해 들이던 긍정적 추세는 그러나 19세기 이후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등의 역풍을 맞아 오히려 퇴보를 거듭하다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뒤에야 유엔이 선포한 ‘세계 인권 선언’(1948)으로 힘겨운 결실을 맺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인권 선언’으로 인권에 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전 세계에는 2700만 명의 노예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차별과 고문, 감시와 억압은 도처에서 교묘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인권 상황은 이 정부 들어 갈수록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통찰에 기대어 말해 보자면, 저들에게는 공감의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인권의 의미를 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불의를 겪을 때 당신은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245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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