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지식인이여, 그대 무얼 하는가

등록 2005-05-26 15:56수정 2005-05-26 15:56

 냉소적 이성 비판<br>
\\
냉소적 이성 비판
\\
“새로운 가치를 담은 주장? 아니오, 됐습니다.” 냉소적 태도.

“고리타분한 걸 배워 어디에 쓰나요. 대중과 시장에 맞춘 쓸모있는 지식이 필요해요.” 실용적 태도.

지식에 대한, 요즘 세상의 가장 흔한 반응을 요약하면 이럴 법하다. 적어도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58·카를수루에 조형대학 총장)와 헝가리 출신의 사회학자 프랭크 퓨레디(57·영국 켄트대학 교수)의 눈에는 그렇다. 두 사람은 이런 세태를 두고 이렇게 진단한다. 슬로터다이크는 “시대는 온통 냉소적이 되었다. 우리는 계몽되었지만 무감각해졌다”고 말하고, 퓨레디는 “천박한 무교양주의와 불건전한 도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한숨을 내쉰다.

‘지성의 몰락’ ‘지식인의 최후’라는 말이 널리 퍼진 우리 시대에, 다시 지식·지식인의 존재양식을 되묻는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우리 시대정신을 ‘냉소주의’에서 발견하는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 이성 비판>(에코리브르 펴냄)과 무교양주의 세태를 질타하는 퓨레디의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청어람미디어 펴냄)는 지식의 위기 현상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고 다른 대안을 내놓는다.

슬로터다이크는 <냉소적 이성 비판>에서 이성이 승리한 근대의 ‘계몽’ 이후에 유토피아의 이상들이 허구였음이 차례로 폭로되면서 “더 이상 확고한 것은 없”는 세상이라는 냉소주의 선언을 한다. 세상은 복잡해졌고, ‘거리 두기’를 해야 할 비판이론은 인간사회와 너무도 밀접해졌다. 그리하여 “비판의 시간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공평무사, 자유로운 시각은…이제 거짓말이 되었다.”(발터 벤야민)

냉소는 어디에서 싹튼 것일까. 그는 근대 계몽주의 이후 그토록 믿어왔던 허구들이 이성에 의해 폭로(해체)된 계몽의 기획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성경의 계시에 대한 믿음이 깨어졌고 엄격한 지적 금욕주의를 내세운 형이상학의 허구가 무너졌고 상부구조의 허구는 하부구조에 의해 전복됐다. 또 무의식의 세계가 증명됐고 도덕적 계몽은 쫓겨났으며 인종·성 차별의 자연주의는 허구성을 들켰으며 시민·노동계급의 자아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다. 인간평등의 이상을 내세운 공산주의의 허구적 현실이 드러나고 인류에 복지를 가져다준다는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절대이상’ 허구성 드러나
세상은 온통 냉소 투성이
교육·예술이 ‘도구’된 시대
“이성 중심향해 저항하자”
“교양 있는 대중을 키우자”


그리하여 그의 냉소주의 선언은 이렇게 압축된다. “파멸이 다가오고 있다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가 만병통치약처럼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냉소적이 되었고, 이 새로운 가치도 단명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우리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의미 있는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 냉소의 시대에 이제 지식·지식인은 어찌할 것인가?

퓨레디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에서 그는 지식과 교육·문화·예술을 대중과 시장의 실용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시킨 교육·문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불합리한 권력과 권위를 비판하고 조롱하며 전복했던 계몽의 보편적 지식인이 사라지는 ‘무교양주의’의 세태를 개탄한다.

“천박한 무교양주의와 불건전한 도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징후는 이렇다. 보편 가치를 좋는 진리는 조롱당하고 ‘탁월한 기준’의 진리를 탐구하는 지식인의 가치는 추락하여 이제 보편적 지식은 사라졌으며 지식인은 전문기술자로 살아간다. 지식과 문화·예술은 ‘도구주의’로 해석되며 교육의 목표는 “경제성장의 엔진을 마련하는 것”이 됐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지식은 대중을 교양 없는 바보로 만들고 있다. 퓨레디는 지식정보와 평생교육을 강조하는 시대에 지식의 질은 오히려 하향평준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중의 지적 수준을 “어린애처럼 취급하는” 엘리트주의적 대중주의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이런 세태의 대안을 찾는다. 슬로터다이크는 이성의 힘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추구하고 주장하는 냉소주의 시대에, 이성 중심을 향해 ‘혀를 내밀고’ ‘방귀를 뀌며’ 뻔뻔하게 저항하는 ‘견유주의’야말로 비판의 자세로 유효하다고 주장한다.“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 말해야 한다.” 이에 비해 퓨레디는 수많은 대중을 속이는 사기행위를 그만두고 ‘교양 있는 대중’을 성장시켜 사회의 지적·문화적 삶을 발전시키라고 주장한다. 지식의 권위를 축소시킨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그는 우리 시대를 향해 천박한 무교양주의에 맞서는 ‘문화전쟁’을 시작하라고 촉구한다. 냉소와 무교양의 시대에, 지식은 이제 자신이 떠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갈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