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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말과 글이 되는 순간 진실은 휘발된다

등록 2005-05-26 20:54수정 2005-05-26 20:54

김연수 소설집<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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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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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유럽쪽 언어에서 ‘역사(history)’와 ‘이야기(story)’는 동일한 어원을 지니고 있다. ‘역사’가 있었던 일, 그러니까 사실에 관계되는 반면, ‘이야기’는 있지 않았던 일, 그러니까 허구와 친연성을 보인다는 점이 양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사실과 허구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로서의 역사와 허구로서의 이야기를 구분하지 않으려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태도는 그렇다면 표면적인 차이를 넘어 근본적인 동일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근원 회귀적 모티브의 소산이라 할 법하다.

런던 · 하얼빈…공간 한계 훌쩍

김연수(35)씨의 세 번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창비)는 역사와 이야기,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일에 몰두한다. 책에 수록된 아홉 단편이 지극히 다채로운 무대와 주인공과 이야기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그것들이 결국은 ‘하나의’ 주제를 향한다는 사실은 자못 놀라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느 작가의 어떤 소설집이건 주제의 일관성을 어느 정도로는 구현하고 있게 마련이지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보이는 주제의 균질성은 무서우리 만치 집요하달까 하품이 날 만큼 단조롭다고나 말해야 할 정도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의 이야기들은 겉보기에 매우 다종다양하다. 그 다양성은 더구나 한국 소설들이 암암리에 설정해 온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성질의 것이어서 주목된다. 작가는 춘향과 이도령의 시대(<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나 개화기(<거짓된 마음의 역사>), 또는 일제강점기(<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나 일제 말기에서 한국전쟁까지(<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기(<뿌넝숴>)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가 하면, 영국 런던(<그건 새였을까, 네즈미>)과 중국 하얼빈(<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그리고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등지로 공간을 건너뛰기도 한다. ‘지금 이곳’을 다룬 작품이라고는 소설집 맨 앞에 놓인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정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박지원의 실학 시대와 김옥균·홍영식의 구한말 무렵이 상당한 비중을 지닌 채 기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과 허구 경계 지우기 주제를 위한 아홉편 변주
유려한 문장으로 다채로운 시공 넘나들어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 존재한다” 도저한 허무 관통


소재의 다양성이 각각의 소재에 어울리는 문체와 형식으로써 안받침된다는 사실은 작가의 타고난 역량과 비범한 노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경우에 따라 한시와 월트 휘트먼의 시를 자재로이 구사하는가 하면, 한문과 일본어 텍스트를 적절히 인용하고, 조선 시대와 식민지 시기의 어투와 습속을 여실히 재현하며, 역사 기록과 등반 지식 따위를 풍부하게 동원함으로써 작품의 속살을 찌우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짐짓 책 읽기의 부질없음을 한탄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 책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팔할’이 다른 책들에서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휘트먼 목소리 · 식민지 어투 술술

그런데 이 소설집에서 정작 문제적인 것은 이처럼 다채로운 외양이 사실은 거의 동일한 주제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와 이야기, 사실과 허구 사이의 구별 지우기가 그것이다.

“몸소 역사를 겪어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뿌넝숴라고 말해도, 역사를 만드는 자들은 거기에다가 논리를 적용해 앞뒤를 대충 짜맞추고는 한 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뿌넝숴>)

“주석이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해석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해석을 채택하는 일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그 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다.”(<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앞의 인용문은 ‘말할 수 없다’는 뜻을 제목으로 지닌 <뿌넝숴(不能說)>의 주인공 화자가 들려주는 역사관이고, 뒤엣것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달았다는 교수가 생각하는 주석에 관한 정의다.

‘말할 수 없’고 ‘알 수 없’으며, 말이나 글로 표현되는 순간 진실은 휘발되고 만다는 것, 그래서 말과 글 속에는 진실이라고는 한 톨도 들어 있지 않다는 도저한 부정과 허무의 태도야말로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관류하는 핵심에 해당한다. 인용한 두 작품말고 다른 거의 모든 소설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언급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역사(란) 사소하고 우연하고 모호한 일들의 연속체”(20쪽),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124쪽), “확실한 것은 없었다”(143쪽),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일은 우연 중의 우연이 아닌가”(194쪽), “인생이란 그저 사소한 우연의 연속처럼 보였다”(199쪽), “백주의 작열하는 햇살 속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한 편린의 진실도 건질 수 없는 것”(245쪽) 등등, 등등.

“인생이란 사소한 우연의 연속”

작가가 수록 작품의 제목도 아니고 본문 속의 한 구절도 아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소설집의 제목으로 삼은 데에도 역사와 기록, 말과 글에 대한 이런 부정과 회의가 들어 있어 보인다. ‘유령작가(ghost writer)’란 본디 대필 작가 또는 거짓 작가를 가리키거니와, 이 소설집의 맥락에서는 그가 쓰는 글을 믿을 수 없는, 신뢰하지 못할 작가를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유려하고 안정적인 문장에 얹혀 전달되는 작가의 이런 주장은 썩 매력적이고 솔깃하게 다가온다. 집단적 가치와 공표된 사실에 맞서 죽음으로써 개인의 내밀한 진실을 호소하는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주인공들을 보게 되면 작가의 태도에 동조하고 싶은 유혹은 한층 커진다. 역사란, 과거와 미래란 다 부질없는 것, 다만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몸으로 느끼는 실감일 뿐. 이러면서 주저앉고 싶어진다. 그러나, 사정이 꼭 그렇기만 한 것일까. 가령,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은 안중근 개인의 차원에서 보자면 우연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속에서 이토의 제거란 역사적 필연이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중근 개인이 우연이었다고 해서 이토의 암살까지도 변덕과 즉흥으로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진실이란 우연과 필연 사이, 개인과 집단 사이, 실존과 역사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빚어지는 도자기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서 잠도 안 온다”는 작가 후기의 마지막 문장에 기대를 걸어 보고 싶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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