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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8월 15일 잠깐독서

등록 2009-08-14 19:40수정 2009-08-14 19:44

〈참여의 희망〉
〈참여의 희망〉




정치학 이론 통한 ‘촛불’의 재해석

〈참여의 희망〉

2008년 5월2일. 서울 청계광장에 ‘작은 촛불’이 켜졌다. 10대 소녀들이 피워올린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의 촛불이었다. 이 작은 촛불이 거대한 ‘불의 파도’를 만들어내 ‘100만 촛불대행진’을 이룰 줄은 당시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참여의 희망>은 2008년 5~6월 촛불집회에 대한 이론적 분석서다. 그해 여름의 뜨거운 불꽃 행렬은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만권씨의 감성을 크게 자극한 것 같다. 지은이는 책에서 촛불에서 커다란 희망을 보았고, 자신도 책임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그 다짐의 결과다. 하여, 지은이가 ‘촛불’을 보는 시선은 불법행위란 보수 쪽 태도와 100% 다른 대척점에 서 있다. ‘촛불’은 ‘정당한 민주적 행동’이며, ‘경제성장보다는 민주주의를 선택한 시민들의 용기’였으며, ‘광장과 거리의 참여민주주의’와 ‘시민불복종 운동’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책에서 이를 2006년 미국의 불법이민자 운동 등 역사적 사례와 간디의 비폭력 사상 등 여러 사상과 이론을 통해 논증하면서, ‘초일상의 정치’란 새로운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책은 더불어 읽는 이들에게 참여민주주의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고민하게끔 하며, 광장과 거리의 민주주의가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과 그 정치·사회적 의미를 곱씹도록 한다. ‘촛불집회의 대안은 정당정치인가’,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 등 촛불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쟁점에 대한 나름의 생각도 제시해 재미를 더했다. /한울·1만4000원.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여신과의 대화-세계 금융위기와 그 후〉
〈여신과의 대화-세계 금융위기와 그 후〉
지나친 방임이 야기한 금융위기

〈여신과의 대화-세계 금융위기와 그 후〉

1997년 대한민국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평생직장’이라 믿었던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날 즈음,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을 받아야 했고 그 조건으로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했다. 영미식 ‘선진’ 금융자본주의가 이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의 겨울은 11년 전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무분별한 부동산 대출에서 시작된 문제는 금융기관의 부실을 가져왔다. 경기는 위축됐고 실업자는 늘어났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탓에 미국의 경기침체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됐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국은 이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반성문을 쓰기에 바쁘다. 지은이 차기태씨는 <여신과의 대화, 세계 금융위기와 그 후> 서문에서 말한다. “미국이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몰리게 됐을까?” 지은이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인간의 현명한 판단을 돕는 그리스 여신 ‘칼리오페’를 책 속으로 모셔왔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미국식 자본주의를 여신은 준엄하게 꾸짖는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고전 속 명언도 촌철살인이다. “너무 많은 자유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 못 된다”(파스칼의 <팡세>)며 자유방임적 금융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식이다. 지은이는 칼리오페 여신과 정중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다. 채권자가 기업의 회생보다는 파산을 바라게 만드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같은 ‘괴물 파생금융상품’이 창궐한 현상을 “금융회사들과 금융당국의 근친상간”이라고 적확하게 지적한다. 대화 형식이라 어떤 분석기사보다도 이해하기 쉽다. /필맥·1만3000원.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대통령의 운명 결정한 ‘사회불안’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음이 건강하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노무현은 부모·형제들의 사랑을, 사실상 아버지가 없었던 오바마는 어머니와 외조부모의 사랑을 넉넉히 받았다. 이들이 유아기 때 받았던 애정이 사람과 세상을 신뢰하는 바탕이 됐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겐 큰 심리적 약점이 있다. 아버지들이 약하거나 부재해 ‘사회불안’이 이들의 무의식에 깊이 새겨졌다는 것이다. 사회불안이란 사회에서 성공하기 어려우리라는 두려움이다. 노무현의 아버지는 양심적이었으나 실패했고, 오바마의 아버지는 정의로왔으나 오바마를 버렸다. 이들은 아버지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올발랐으나 실패하지 않은 링컨을 ‘모델’로 삼았다.

지은이는 노무현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이유 역시 ‘사회불안’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무현은 ‘장군’형 성격으로 민중의 비극적 운명을 극복하는 일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동시에 아버지나 김구처럼 정의롭게 패배하기보다 현실에서 승리자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그는 이를 자신의 패배로 받아들였다. 민주주의 후퇴가 그에게 망나니칼로 다가오자 그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버렸다.

그러면 ‘순교자’형 성격인 오바마의 운명은? 지은이는 노무현보다 일찍 ‘사회불안’과 대면한 오바마가 ‘승리 강박’에서만 벗어난다면 대통령직은 축복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예담·1만2000원.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막다른 골목에서 솟아오르다〉
〈막다른 골목에서 솟아오르다〉
가족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막다른 골목에서 솟아오르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통보를 받고 서른두 살의 웹 디자이너인 ‘나’는 아버지의 고향 아령으로 내려간다. 어머니 집에서 독립해 월세 100만원의 번쩍번쩍한 오피스텔에 입주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고향에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사건을 둘러싼 특별수사반이 꾸려진다.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가족. 또다른 누군가의 급작스런 죽음 같은 사고는 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을 대상으로 한 취조 과정에서 놀랄 만한 가족의 비밀이 하나씩 발가벗겨진다.

소설 안에는 미더운 관계, 관계의 불안이 가득하다. 남동생의 동성애적 취향, 아버지보다 43살이나 어린 애인, 어머니의 이상한 관계 등이 ‘나’ 앞에 새롭게 등장한다. 하지만 어디 가족만 골칫덩어리일까. 작가는 30대 초반의 ‘나’를 직업, 결혼, 자아 정체성이란 무게감에 억눌린 가장 불안한 존재로 그려낸다. ‘나’라는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좋게 말해 여전히 성장 중, 나쁘게 말해 방황 중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세상의 무수한 소설은 가족의 한계와 상처를 그리면서도 움켜잡을 수밖에 없는 가족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작가 또한 ‘내 눈엔 완전한 가정이 드물어 보인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가족이 주는 상처와 절망 끝에서 무언가 만져지는 희망을 건져내겠다’고 적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절을 찾게 된 ‘나’는 노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허둥거리는 자아’와 비로소 맞닥뜨린다. 상처일지언정 가족간 주고받는 대사가 드라마 한 장면처럼 현장감 있게 살아 움직인다. 정녕 가족은 막다른 골목일까. 이청해 지음/문학의문학·1만1000원.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조일전쟁〉
〈조일전쟁〉
왜곡된 이름 ‘임진왜란’

〈조일전쟁〉

‘이름’은 많은 경우, 이름 붙인 이의 철학, 더 나아가 정치적 목적까지를 내포한다. ‘1592년에 시작된 조선과 일본의 대전쟁’을 다룬 <조일전쟁>의 지은이인 재미사학자 백지원씨는 위정자들에 의해 왜곡된 대표적 이름으로 ‘임진왜란’을 꼽는다. 왜냐하면 지은이는 ‘왜란’이란 이름을 “당쟁으로 썩어빠진 조선 관료들의 계승자들이 전쟁이 끝난 후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같은 사실을 ‘왜란’이라 부를 때, 아무 명분도 없는 왜구가 일으킨 난리가 되지만, ‘전쟁’이라 부를 때, 국제적인 정세와 힘관계, 참전국의 준비 정도와 명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건이 된다. 이 재야 사학자는 7년에 걸쳐 조선, 일본, 명 세 나라가 50만명 이상의 대병력을 투입하고, 대포, 박격포, 로켓포, 함포, 기관총, 수류탄 등 초보 수준의 현대 병기가 모두 동원됐던 이 전쟁엔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출발점이 위정자들에 의해 과장된 부분을 제거하는 것인데, 지은이는 ‘성웅 이순신’을 그 첫손가락에 꼽는다. 지은이 또한 이순신이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이란 점을 부인하지 않으나 24전 24승 등의 신화가 그를 과도하게 영웅으로 만들고, 이에 따라 전체 전쟁에 대한 판단도 흐리게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순신이 16전의 싸움에서 13승 3패를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전과에서 전투 같지 않은 소소한 충돌은 빼야 하고, 승전으로 기록된 1593년 2월 웅포해전 등은 패전으로 기록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진명출판사·1만3900원.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조선국왕의 일생〉
〈조선국왕의 일생〉
어깨가 무거웠던 남자, 조선국왕

〈조선국왕의 일생〉

만인지상이라는 왕. 이들은 여지없이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물론 그 화려함 뒤로 이 자리는 수많은 이들의 피를 받아마셨다. 부모형제 간의 도륙도 예사다. 도대체 왕은 얼마나 멋진 인생을 손에 넣기에, 사람들은 ‘절대반지’에 홀린 듯 그 자리를 염원했을까. 규장각한국연구원이 펴낸 <조선 국왕의 일생>은 바로 그 왕들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권력의 화려함보다는 그 위에 얹힌 무게를 보게 된다. 왕은 ‘나라의 운명’이라는 짐을 평생 진다. 지금이야 삼권분립이 되어 있지만 조선시대 왕은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를 두루 관장해야 했다. 해가 뜨기 전에 옷을 입고, 날이 저문 뒤에야 밥을 먹는다는 ‘소의간식’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신하란 자들은 모두 유교 논리로 완전무장된 사대부다. 새 정책을 시행하려면 유학 경전을 널리 인용하면서 자신의 정치이념을 정리해서 밝혀야 했다. 그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깐깐한 유생들의 빗발치는 상소에 시달리기 일쑤다. 이 때문에 왕은 유교적 원칙에 맞춰 성인이 되기 위해 밤낮이고 공부했다고 한다. <조선 국왕의 일생>은 왕의 탄생·성장·결혼과 의식주까지 그들의 일생을 역사 기록 속에서 건져내 재구성했다. 전반부는 왕손들이 태어나서 어떻게 왕으로 길러지는가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후반부는 식생활 등 궁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책은 전문가들의 자세한 설명과 화려한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어 읽는 내내 잘 꾸며진 박물관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글항아리·1만9800원.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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