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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랑한다면, 노력이 먼저라오

등록 2009-09-11 19:11수정 2009-09-11 19:13

사랑한다면, 노력이 먼저라오. 김연수 작가.
사랑한다면, 노력이 먼저라오. 김연수 작가.
소설가 김연수 4년만에 선보인 단편집
죽음과 상실에 관한 아홉가지 이야기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문학동네·1만원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는 김연수(사진)씨의 열 번째 소설책이자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이후 4년 만에 내는 네 번째 소설집이다. 1994년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출발한 지 15년, 이제 그는 한국 소설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번 작품집에 묶인 아홉 단편은 대부분 죽음 또는 죽음에 준하는 상실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전개된다. 여타의 수록작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질적인’ 단편인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거의 유일한 예외로 보일 뿐, 가령 직접적으로 죽음이 등장하지 않는 <모두에게 복된 새해>에서도 ‘아기’의 부재라는 사태는 주인공 부부를 슬픔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죽음에 필적할 만한 상실감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작가는 왜 이토록 죽음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삶의 핵심이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을 뭉뚱그려서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죽음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아니겠는가. 죽음은 그 일회적이며 돌이킬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삶을 비추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 된다.

그러니까 소설이 삶에 관한 이야기라면, 김연수씨의 소설들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단편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를 보자. ‘레이먼드 카버에게’라는 부제를 단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카버의 소설 <대성당>에 대한 오마주인 것에 못지않게,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역시 카버의 또다른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카버의 소설에서, 주인공 부부가 어린 자식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을 ‘괴롭히던’ 빵집 남자가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따뜻한 빵으로 그 부부를 위로했던 것처럼,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에서는 각각 연인과 어린 아들을 잃은 두 여성이 시종 어긋나고 삐걱대다가 이야기를 통해 사실을 알고 난 뒤에야 서로를 이해하고 위안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단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나 <세계의 끝 여자친구>, <달로 간 코미디언> 등 다른 작품들에서도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행위는 상호 이해와 위안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수반한다. 죽음은 상실이요 고통이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일은 그 상실과 고통에 대한 치유가 된다는 것이 김연수씨의 생각인 듯하다.


이야기를 하고 또 듣는 일을 다른 말로 소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두드러졌던바, 김연수씨는 진실이니 객관이니 이해니 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태도는 아직까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어서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81쪽)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럴수록 더욱, 소통과 이해를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작가의 말’) 역시 ‘작가의 말’에서 그가 “우리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이라 표현한 것이 바로 소통을 위한 노력일 것이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의 자동차 사고와 엘에이(LA) 폭동의 불,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에서의 불타버린 남대문과 용산 참사, 그리고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서 ‘그것’으로 지칭된 촛불집회가 바로 그 불꽃들이다.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피어오른, 하지만 바깥의 불꽃이 없었다면 애당초 타오르지 않았을, 그런 따뜻한 불꽃”(‘작가의 말’)이 이번 소설집의 핵심에서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불타오르고 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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