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대만 자오퉁(교통)대 교수,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한국 백원담·대만 천광싱 교수 대담
“미국 자료 종속 벗어나야…역사 경험, 아시아 지성 교집합 될 것”
“미국 자료 종속 벗어나야…역사 경험, 아시아 지성 교집합 될 것”
한국과 대만에서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 연구’의 시각과 방법론을 탐색해온 두 학자가 만났다.
국내 대학들과 아시아학 석·박사과정을 공동 개설하는 문제를 논의하러 지난주 방한한 천광싱 대만 자오퉁(교통)대 교수(사진 왼쪽)와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오른쪽)다. 1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아시아학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제도적·문화적 제약요인들을 맹렬히 성토했다. 백 교수는 “아시아를 연구하려 해도 정작 아시아에는 쓸 만한 자료가 없다”고 개탄했고, 천 교수는 “협애한 민족주의와 폐쇄적 분과학문 체계가 아시아의 지식생산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우려했다.
백 교수는 무엇보다 아시아와 관련된 주요 자료 대부분이 미국의 정부기록 보관소나 대학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학문의 독립은 자료의 독립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아시아는 우선 자기들만의 아카이브(문서 보관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 교수는 아시아의 학문생산 시스템에 내장된 문제점을 지적했다. 학문의 참조 체계나 학습 대상이 지나치게 미국 학문에 편중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현실에 즉각적으로 개입하고 비판하는 루쉰의 비판적 글쓰기처럼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지식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다”며 “지식의 형식을 다양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엔 아시아의 전통적 학문 방법론이 유력한 참조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에서 소통과 공동 연구의 지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천 교수는 “아시아학은 특정한 매개 없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며 “한국과 대만이 같으면서도 다르게 경험한 식민지와 냉전 역시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 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중요한 매개물”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도 “전후 아시아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규정한 것은 냉전과 미국이었다”며 “무엇보다 아시아 각국이 국민문화를 형성하고 제도화하는 거시적 과정과 냉전이 의식적·심미적·일상적 차원에서 내면화되는 미시적 과정을 중층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같은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문화적 형성 배경이 다른 타국의 학문 전통을 접했을 때 느낀 당혹감과 놀라움도 털어놓았다. 중국 개혁개방 직후인 1992년에야 중국 학자의 논문을 처음 읽었다는 백 교수는 “각주가 없고 선언적 주장으로 가득 찬 글을 과연 논문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면서도 “한국 학자들보다 서구의 논문 형식에 충실한 최근의 중국 논문을 보면 새삼 서구 학문, 특히 미국 학문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천 교수는 “최근 대만에서 출간된 백영서 연세대 교수의 <동아시아를 생각한다>를 통해 쑨원의 대아시아주의에 대해 1920~30년대 한국인들이 보여준, 중국과는 다른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며 “이런 만남을 통해 평면적 지식이 아닌, 다면적이고 살아 있는 아시아의 상도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천 교수는 방한 기간 중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와 연세대 국학연구원 등 아시아학 공동학위과정 개설을 위한 한국 쪽 참가단체 관계자들과 태스크포스팀 구성 문제 등을 논의한 뒤 지난 주말 출국했다. 글 이세영 기자,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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