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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연암의 지극한 붓끝, 오롯이 되세워…

등록 2009-09-25 19:12

〈열하일기 1·2·3〉
〈열하일기 1·2·3〉
한문학자 김혈조 ‘열하일기’ 완역
원전 오탈자까지 꼼꼼히 바로잡아
‘연암 문체’ 흠집 낸 번역서에 경종




〈열하일기 1·2·3〉
박지원 지음·김혈조 옮김/돌베개·각 권 2만8000원(하드커버 각 권 3만5000원)

조선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연암 산문 연구에 몰두해온 한문학자 김혈조 교수(영남대 한문교육과)의 새 번역으로 완역 출간되었다.

세 권으로 묶인 이 번역본은 분량이 1500여쪽에 이른다. 책을 펴낸 돌베개 출판사가 ‘새 번역 완역 결정판’이라는 문구를 내건 데서 보듯, 기왕에 나와 있는 번역본들의 오류를 꼼꼼히 바로잡았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역작이다. 1932년 간행된 박영철 본 <열하일기>를 저본(대본)으로 삼았으며, 저본에 없는 글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필사본을 참조하여 보충하고, 저본의 오탈자도 다른 필사본과 대조하여 고쳤다고 밝히고 있다. 원작 <열하일기> 자체의 오탈자 역시 바로잡았다.

<열하일기>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연암 박지원(1737~ 1805)이 1780년 5월 청나라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려는 조선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일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한양을 떠나 요동과 베이징을 거쳐 열하로 나아가 그곳에 머물다 돌아오기까지 6개월 가까운 여행이었는데, 돌아오자 집필에 들어가 1783년에 완성했다. 중국 청나라의 신문물을 목도하며 받은 충격과 이를 낱낱이 소개하겠다는 기록자의 치열한 자세가 배어 있으며, 중국의 역사와 풍속, 지리, 토목, 건축, 천문, 선박, 문화와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섭렵한 방대한 저작이다. 이번 번역본에는 옮긴이가 2007년 8월부터 1년 동안 중국에 머무는 동안 연암의 여정을 따라가며 찍은 사진을 비롯한 도판들이 단정하게 적소에 박혀 있다.

연암의 지극한 붓끝, 오롯이 되세워…
연암의 지극한 붓끝, 오롯이 되세워…

<열하일기> 최초의 전문번역은 <역사 앞에서>의 저자인 김성칠이 1948~50년 내놓은 번역본인데, 안타깝게도 3분의 1가량만 번역되었다. <열하일기> 번역 사상 획기적인 저술로 꼽히는 건 북한에서 1950년대 발간된 리상호의 첫 완역본이다. 1966~73년에 출간되어 일반인과 학자들에게 널리 읽힌 이가원의 완역본 <국역 열하일기>와 1982~84년 윤재영의 박영문고본 완역 등이 주요한 번역으로 꼽힌다. 이후 나온 번역본은 축약본·편역본까지 아우르면 수십종, 중요하게 언급되는 책만도 10여종에 이른다.

옮긴이 김혈조 교수는 역자 서문에서 “기존 번역서에는 밝히지 못한 전고와 오역이 대단히 많아서 원작 내용을 왜곡한 경우가 있었다”며 “오역이 판을 치고 베끼기의 아류 번역서가 횡행하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한문학보>에 발표한 ‘열하일기 번역의 여러 문제들’이란 논문에서 기존 번역본의 오류를 짚었는데, 그 요지는 김성칠 본과 리상호 본 이후 출간된 번역서들이 이 두 번역본을 베끼거나 과도하게 참조한 사례가 꽤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번역본의 오류가 새로운 번역에서 되풀이되는 ‘오역의 베끼기’도 심심찮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라마교에 대한 글인 <황교문답>에서 티베트에 다녀온 명나라 사람의 이름을 말한 부분을 리상호 본이 ‘중 지광, 오향(吾鄕) 하객 등 여러 사람’이라고 번역했는데, 이후 이가원 본 등 대부분 번역에서 오향을 사람 이름으로 베끼거나 얼버무렸다. 옮긴이는 오향(吾鄕)은 ‘우리 고향’이라는 뜻이므로 ‘승려 지광, 우리 고향의 하객 등 여러 사람’이 맞다고 말한다.

<열하일기>는 조선이 중국과 세계를 향해 눈을 뜨고 신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외쳤던 230년 전 지식인 연암의 이용후생 사상과 박물지적 박학이 녹아든 저작이다. 이미 18세기에 일부를 옮긴 한글 필사본이 등장했을 만큼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였지만, 20세기 초까지 활자로 간행되지 못하고 사실상 불온서적처럼 (한문) 필사본으로 돌아다닌 책이기도 하다. 연암의 당대 조선에 대한 풍자와 가차없는 비판, 정조의 연암 문체에 대한 낙인찍기 등이 그 까닭이다.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며’(<도강록>)로 시작되는데, 서두에서부터 연암은 명나라가 망한 지 130여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명이 중국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믿는 조선의 세태를 비판한다.

그는 “명나라 왕실이 오히려 압록강 동쪽에 존재”하고 있으니, 자신이 명나라 연호 ‘숭정’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힘이 약해서 비록 저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 땅을 깨끗이 청소하여 전통의 문화제도를 회복할 수야 없겠지만 모두가 숭정이라는 연호라도 존숭하여 중국을 보존하려는 까닭”이라고 비틀어 적는다.

압록강을 건너면서는 압록강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임을 상기하고는, 그 경계란 언덕이 아니면 강물이니, 도(道)라는 것은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다고 설파한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마치 강물이 언덕과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도 같은 것이라는 논지다. 요동 벌판을 지나면서는 지나치게 조선의 고대 강역을 한반도로 축소시킨 역사가들과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을 비꼬는가 하면, 베이징과 열하에 이르러서는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드러내며 중국 지식인들과 필담 교유를 나눈다.

연암의 ‘경직된 주자학적 사유체계’에 대한 비판은 열하에서 쓴 코끼리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하늘을 창조주로 보고 매사를 이(理)로 해석하는 주자학의 고전을 두고 이렇게 쓴다. “세상의 털끝같이 작은 물건도 모두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들 한다. … 하늘이란 형체로 말한다면 천(天)이요,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하는 면으로 말한다면 상제(上帝)요, 묘한 작용으로 말한다면 신이라고 말하니, … 그 호칭이 너무 난잡하다. … 나는 대체 모르겠다. 하늘이 컴컴하고 뽀얗게 자욱한 곳에서 과연 어떤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인지.”

연암의 후학인 유득공은 <열하일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중국의 노래나, 풍습에 관한 기록조차도 나라의 치란(治亂)에 관련된 것들이고, 성곽·궁실 묘사, 농사와 목축, 도자기를 굽고 쇠를 다루는 기술까지, 그 일체가 기구를 과학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여 민생을 두텁게 하자는 이용후생의 길이 되는 내용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그림 돌베개 제공


“속재필담 한 대목 깨치고는 ‘야호’ 소리치고 싶었죠”

‘열하일기 완역’ 김혈조 교수

김혈조 교수
김혈조 교수
압록강을 건너 봉성·백탑보를 거쳐 심양에 도착한 연암은 한밤중에 숙소를 빠져나와 중국의 젊은이들과 밤을 새워가며 필담 토론을 벌인다. ‘예속재’라는 곳에서 나눈 대화가 <속재필담>이라는 글인데,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중 하나가 서른다섯 나이에 자식 여덟을 둔 비공이라는 이다.

연암이 그에게 “자제 여덟은 모두 한 어머니에게서 나서 젖을 먹었는가요”라고 묻자, 비공이 미소만 지으니, 같이 대화를 나누던 배관이라는 이가 나서서 “두 분 마나님이 더 있는데 좌우에서 끼고 도와드렸답니다” 하고는 “오불선타팔룡 모거일간”(吾不羨他八龍 慕渠一姦)이라 말하여 온 방안이 한바탕 웃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첫 완역본인 리상호 본은 ‘오불선타팔룡 모거일간’을 ‘나는 저 사람의 아들 팔형제가 부러운 것보다 작은마누라나 하룻밤 빌렸으면 그만이겠소’로 번역했다. 남한의 번역본은 대부분 이를 따랐다.

김혈조 교수는 번역 교정지를 들고 마지막까지도 그 부분이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작은마누라 빌려달라’고 한 뒤 웃는가 말이에요. 다시 원문을 붙들고 들여다봤죠.

어느 순간, 모거일간(慕渠一姦)의 ‘간’(姦)에서 계집 녀 글자 세 개가 눈에 들어오면서, 아하, 본부인에 작은부인 둘이니, 여자 셋이구나, 팍 오더라고요.” 김 교수는 <열하일기> 번역을 하며 기뻤던 순간을 이렇게 꼽았다. 어린아이처럼 ‘야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원문을 상식적으로 번역해야 하고, 파자 식으로 쓴 것이 연암 문체의 한 특징이니 ‘간’(姦)은 한자의 본뜻보다는 여자 셋이라는 파자로 보아야 하는 거였죠.” 그는 ‘나는 여덟 아들이 부러운 게 아니라 한 남자가 세 여자를 거느렸다는 게 더 탐납니다라고 하여 온 방안이 한바탕 웃었다’고 번역했다.

그가 <열하일기>를 완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2000년 중국 답사를 다녀오면서다. 그 뒤 짬나는 대로 번역에 몰두했고, 2007년 8월부터 1년 동안 중국 산둥대학에서 머물며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마무리에 매달렸다.

그는 <열하일기>를 읽는 오늘의 의미를 연암이 그 글들을 쓴 이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학이란 중국을 배우자는 것이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닙니다. 당시 청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니, 조선을 개혁하려면 중국 변화와 맞물려 있으니, 단순히 감탄만 하고 온 게 아니라 그들의 전략을 알고 대처하자는 겁니다. 230년 전 연암이 고민한 것처럼, 지금은 그 세계 중심이 미국이겠지요.”

연암의 참생각은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있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정운찬씨가 벼슬하겠다고 나서는 게 지식인의 역할일까요? 연암은 중국 왕조 교체 때마다 죽음으로 항거한 이들을 드러내고, 뛰어난 학자라도 협조한 사람은 깔보았습니다.”

그는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연암집> 전체에 대한 정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연암집 전체에 대한 원문 교감을 하고, 통일된 체계를 갖춰서 작업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해요. 정본을 만들어야 조선 최고 작가를 제대로 대우하는 게 될 것입니다.”

글 허미경 기자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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