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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법이 통치자의 종 되면 파멸” 플라톤의 경고

등록 2009-09-25 19:16

〈플라톤의 법률〉
〈플라톤의 법률〉
‘국가’와 쌍벽 이루는 원전 번역
플라톤, 죽을때까지 매달려 써
이데아 반영 ‘차선의 나라’ 설계
“법이 통치자의 주인돼야 축복”




〈플라톤의 법률〉
플라톤 지음·박종현 역주/서광사·5만5000원

플라톤(기원전 427~347) 최후의 대작 <법률>(노모이)이 희랍어 원전 번역으로 첫 한국어 완역판을 얻었다. 플라톤 철학 전문 학자인 박종현(75)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방대한 주석을 달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이는 플라톤의 <법률>에 함께 따라다니는 위작 <미노스>와 <에피노미스>도 아울러 우리말로 옮겨 부록으로 실었다. 이로써 한국어판 <법률>은 1000쪽이 넘는 육중한 책이 됐다. 옮긴이는 이 번역 작업이 “꼬박 5년에 가까운 긴 세월”의 학문적 대장정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앞서 플라톤의 또다른 주저 <국가>(폴리테이아)를 번역한 바 있는 지은이는 <법률>의 학문적 위상을 <국가>에 견주어 설명한다. “<법률>은 <국가> 편과 함께 그 논의의 규모 면에서나 중요성에서 플라톤 철학을 이루고 있는 대화편들 가운데서도 쌍벽을 이루는 것들이라 할 것이다.” “<국가> 편이 50대의 야심 찬 플라톤의 열정이 담긴 거작이라면, <법률> 편은 70대 초입을 지나 철학자로서 원숙한 경지에 이른 그가 팔순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필을 놓지 않고 매달린 또 하나의 초대형 거작이라 할 것이다.” 이 설명대로, 모두 12권으로 이루어진 <법률>은 10권으로 이루어진 <국가>보다도 규모가 큰 저작이다. 플라톤 저술의 전체 분량 가운데 약 20%를 <법률>이 차지한다.

 플라톤(기원전 427~347)
플라톤(기원전 427~347)
플라톤은 이 저작을 쓰는 데 생애의 말년을 바쳤으나 결국 간행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법률>은 초고 상태에서 끝난 저술이다. 플라톤이 ‘밀랍서판’에 써 놓고 따로 정서하지 못한 것을 제자가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옮겨 적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 만큼 이 저작은 <국가>에 비해 문장이나 표현의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내용에서는 완결성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옮긴이는 <법률>의 불완전한 문장 때문에 고통스러운 번역 과정을 거쳤다고 토로하고 있다.

<법률>은 분량에서만 <국가>와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국가>의 맞수 자리에 놓이는 저작이다. 연구자들마다 <국가>와 <법률>을 직접 비교해 대립적 성격을 강조하는 데서도 두 저작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혈기 왕성한 장년기 플라톤의 이상주의를 품고 있다면, <법률>은 이상주의 정치를 포기하고 현실로 눈을 돌려 실현 가능한 국가를 논의했다는 것이 많은 연구자들의 평가다. 그러나 옮긴이는 이런 식의 대립적 평가는 올바른 독해의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가>가 이성이 지배하는 ‘최선의 나라’를 그리고, <법률>이 법이 지배하는 ‘차선의 나라’를 묘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를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로 생각이 바뀐 결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국가>에서 플라톤이 철인-치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 곧 ‘아름다운 나라’(칼리폴리스)를 지상에 실현할 수 있는 나라로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 안에서 플라톤은 그가 그려본 최선의 나라가 “이론상으로나 성립하는 나라”이며, “지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나라”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일종의 ‘본’(파라데이그마=패러다임)으로 설정된 나라인 셈이다. 플라톤이 이상국가를 설계한 것은 그런 ‘본’이 있어야 판단이나 실천의 준거(척도)를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그 준거에 따라 현실에서 올바름(정의)을 세워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나라가 이데아로 존재하는 ‘최선의 나라’라면, <법률>의 나라는 이 이데아가 반영된 현실의 나라, ‘차선의 나라’인 셈이다.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들이 거의 다 스승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데 반해 이 최후의 저작에서는 ‘아테네에서 온 손님’이라는 익명의 존재가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다. 플라톤 자신을 대행하는 이 인물은 가상의 나라 ‘마그네시아’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것에 관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거기서 플라톤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 것이 ‘법률’이다. <국가>가 최고도의 지성과 지혜가 다스리는 ‘이성의 나라’를 보여준다면, <법률>은 그런 이성이 순수하게 통하지 않는 ‘경험의 나라’를 보여준다. 세속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분란을 조정하고 화합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법률의 제정인 셈이다.


요약하면, <법률>이 묘사하는 나라는 ‘법이 지배하는 나라’다. 이 법치국가에서 법은 모든 사람이 복종하고 준수해야 할 최고 권위의 비인격적 통치권자다. 플라톤이 걱정하는 것은 현실의 통치자가 법을 무시하는 상황이다. 그는 통치자들을 “법률에 대한 봉사자”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법이 휘둘리고 권위를 잃은 나라에는 파멸이 닥쳐와 있는 게 보인다. 그러나 법이 통치자들의 주인이고, 통치자들이 법의 종인 곳에서는 구원이, 그리고 신들이 준 온갖 좋은 것들이 생긴다.” 더 나아가 플라톤은 “법률이 일부의 사람들을 위한 것일 경우에” 이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부를 수 없고 도당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법의 이름으로 소수의 이익을 추구할 때 시민이 아니라 도당이 번성한다는 경고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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