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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말 못할 ‘학교폭력’ 누굴 탓하랴

등록 2009-10-16 21:21

〈도와줘, 제발〉
〈도와줘, 제발〉




〈도와줘, 제발〉
엘리자베트 죌러 글·임정희 옮김/주니어김영사·8500원

니코는 고민 끝에 털어놓으려 했다.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그러나 엄마는 “일거리가 없어질 수 있다”며 걱정하다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니코는 “엄마를 더 힘들게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모든 일이 밝혀진 뒤에야 엄마는 가슴을 치며 흐느낀다. “니코의 침묵에 관심을 갖기에는 제 마음에 여유가 너무 없었던 것 같아요.”

<도와줘, 제발>은 학교폭력에 관한 소설이다. ‘질 나쁜 아이들’의 괴롭힘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5학년이 된 니코는 단지 독일어 시험에서 ‘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가해자의 협박에 교실의 다른 목격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 방조자가 된다. ‘제발 도와 달라’며 속으로 외치는 피해자의 이상행동을 선생님은 무심하게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믿을 것은 가족뿐인데 먹고살기 바쁜 부모에게는 줄기차게 아이를 관찰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결국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짊어진 아이는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 게임중독에 빠지고 자살을 꿈꾸고 혼자 죽기 아까워 가해자를 향한 총기 테러를 계획한다. 고통과 절망, 그리고 비행에 이르는 어린아이의 혼란스런 심리 상태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독일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먼 나라 얘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학교폭력은 일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물리적 폭력만이 문제일까. 좋은 옷을 입었느냐, 좋은 아파트에 사느냐, 부모님은 뭘 하시냐… 이런 기준을 가지고 이미 우리 아이들은 서로 구별짓고 상처를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속물적인 기준을 가지고 말이다. 학교폭력은 어른과 아이 모두의 책임이다. 이 책은 구별짓기와 폭력, 그리고 방조의 저열함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부모에게는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할 책임이 있다. 생계에 지쳐 바쁜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보호해 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건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체계가 잡히기 전에 니코가 그러했듯 아이는 부모에게 끊임없이 말하려 할 것이다. 세심한 관심·배려가 불행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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