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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프로이트의 ‘마지막 분석’을 분석하다

등록 2009-10-23 19:44

〈프로이트와 모세〉
〈프로이트와 모세〉
“유대교 부정했지만 ‘유대적 본질’ 믿어
…‘위대한 이방인’ 모세와 자기 동일시”




〈프로이트와 모세〉
요세프 하임 예루살미 지음·이종인 옮김/즐거운상상·1만6000원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사진)가 최후에 집필해 출간한 책이다. 생애 내내 인간의 오래된 신념에 반역했던 이 지적 혁명가는 마지막 저작에서 다시 한 번 ‘반역’을 저지른다. 자기가 속한 민족, 곧 유대인의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프 하임 예루살미(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쓴 <프로이트와 모세>는 프로이트의 이 최후 저작을 분석하는 책이다. 프로이트는 왜 그 책을 쓴 것일까? 유대민족 기원을 뿌리뽑는 듯한 저작을 통해 프로이트가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프로이트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었을까? 프로이트는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에서 “민족의 이익으로 추정되는 것 때문에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라고 썼다. 또 그는 그 책이 “유대인들을 불쾌하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더구나 프로이트가 이 책을 집필하고 출간한 시기는 유대민족이 유사 이래 최악의 대참사로 빨려들어가던 암울하기 그지없는 때였다.

<프로이트와 모세>의 결론을 먼저 밝히면, 프로이트는 유대교를 부정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유대인임을 부정하려고 쓴 것은 더욱 아니었다. 역으로 지은이는 프로이트가 그동안 끝없이 모호한 상태로 얼버무리던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이 최후의 저작에서 밝히려 했다고 말한다. 그 결론을 논증하는 것이 이 책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프로이트의 일생일대 과제는 정신분석학을 ‘유대인의 학문’이라는 국지적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에 프로이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대인들이었다. 그가 1906년 독일계 스위스 의사 카를 융을 만났을 때 다른 제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를 후계자로 삼았던 것도 그 ‘유대인 한계’를 넘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정신분석학의 이 한계에 극도로 민감했던 프로이트는 유대인 문제에서 가능한 한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했다. 프로이트의 그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잡은 뒤 물거품이 될 위기에 빠졌다. ‘타락한 유대 학문’인 정신분석학 책들을 불사르고 정신분석학 연구를 봉쇄했던 것이다. 프로이트가 살던 오스트리아 빈도 1938년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프로이트는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망명했다. 예루살미는 이 긴박하고 절망적인 시기에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는 당시 지식대중에게는 충격이 될 주장을 담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모세가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 귀족 출신이라고 단정했다. 유대교도 이집트에서 유래한 종교였다. 이집트 18왕조 마지막 왕 이크나톤(기원전 1375~1358)은 다신교 신앙을 버리고 진리와 정의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일신교를 받아들였는데, 그가 죽자마자 과거 다신교 사제들이 봉기해 나라가 혼란에 빠졌고 18왕조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크나톤의 일신교를 깊이 신봉하던 이집트 귀족 모세는 이 혼란의 시기에 노예민족이던 셈족(유대족)을 선택해 이집트를 탈출했다. 이 탈출과 함께 유대인이 탄생했다.

모세는 이크나톤이 믿던 유일신 종교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해 일체의 성상·성물 숭배를 금지했다. 유대인들은 이 엄격한 신을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켜 모세를 죽여버렸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자신이 전개했던 ‘아버지 살해’ 논리를 다시 펼친다. 모세를 죽인 유대인들은 그 사건을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모세 살해는 무의식 속에 잠복해 있다 뒷날 다시 의식으로 떠올랐다. 프로이트는 이 복귀를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그들의 ‘태초의 아버지’로 삼았다.


예루살미가 여기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유대교의 핵심 특징으로 꼽는 것들이다. 유대인들은 뒷날 모세의 가르침대로 눈에 보이는 신을 부정하고 추상적인 신을 신봉함으로써 정신의 왕국을 발견했고, 그 정신의 왕국에서 지성을 고도로 발전시켰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프로이트는 그 자신을 ‘신 없는 유대인’이라고 했는데, 이 말 속에는 신앙의 대상인 신은 사라져도 그 신앙이 창출한 유대인의 근본 특성, 곧 윤리적·정신적·지적 특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의 이런 특성이 결국 자신을 통해 정신분석학 창시로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유대교를 부정하고도 유대인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유대적 본질’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예루살미는 말한다.

이와 함께 예루살미가 강조하는 것이 프로이트가 모세와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에게 일신교를 가져다준 ‘위대한 이방인’이 모세였던 것처럼 세상에 정신분석학을 가져다준 위대한 이방인이 유대인 프로이트였기 때문에 그런 동일시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최후의 저작을 통해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이 위기에 빠졌지만 모세처럼 결코 잊히지 않고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유대 정신의 내적 위대성을 입증하려 했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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