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호 동아시아 출판인회의 회장
김언호 동아시아 출판인회의 회장
해제집 내년까지 3개 국어로 낼 것
해제집 내년까지 3개 국어로 낼 것
“다산의 <목민심서>를 중국인, 일본인이 함께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과 백수십년 전의 일입니다. 한자를 매개로 동아시아가 거대한 독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거지요.” 김언호 동아시아 출판인회의 회장(한길사 대표)은 ‘동아시아 100권의 책’ 선정 작업에 대해 “동아시아 독서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선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 동시대 고전들을 각자의 모국어로 풀어내 돌려읽고, 이를 계기로 근대가 파괴한 이 지역의 독서·출판·담론의 공동체를 되살려보자는, 김 회장 개인의 오래된 희망의 피력이기도 했다. “이건 거대한 사상운동입니다. 책을 통해 동아시아의 가치와 정신을 재발견하자는 운동이에요. 왜 하필 책이냐고요? 세상에 책이란 것만큼 한 사회와 시대의 정신·문화적 유산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릇이 어디 있습니까.” 이번 책 선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대부분 책들의 출간 시기가 20세기 중·후반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식민지-제국주의 시대를 벗어나 근대국가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이즈음”이라며 “세계관의 비약과 단절을 가져온 문제적 저작들을 위주로 뽑다 보니 시기가 집중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 차원의 의미 있는 저작을 선정해 공동 출간하는 사업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이다 보니, 서구 출판계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미국의 한 대학 출판부가 이번에 선정된 책 100권을 ‘동아시아 총서’ 형태로 묶어 영문으로 출판하는 방안을 타진중”이라고 귀띔했다. 출판인회의는 일단 선정된 책에 대한 해제집을 내년까지 한국어·중국어·일본어로 출간할 예정인데, 가급적 책의 저자들로부터 직접 글을 받고, 저자가 타계한 경우에는 가장 정통한 학자에게 집필을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최종 출간까지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번역만 해놓는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책이 나오면 대대적인 독서 운동을 펼치려고 합니다. 책 읽는 동아시아 시민들이 벌이는 일종의 공동캠페인입니다. 이를 통해 서로가 생각을 공유하면서 배려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면 정치·경제적인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도 한층 앞당겨질 것입니다.” 물론 책의 출간을 마냥 낙관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상업적인 저작이 아니어서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번역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학술 저작과 방대한 사전들도 적지 않은 탓이다. 김 회장은 “기업들이 적극적 관심을 보인다면 재계와 출판계가 함께 윈윈하는 길인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출판사들끼리 공동기획과 출판도 추진해볼 작정입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출판사들이 하나의 주제를 정한 뒤 각 나라의 대표 필자들로부터 글을 받아 책을 내는 방식이죠. 이게 활성화된다면 세계 출판계에서도 굉장한 사건이 될 겁니다.”
글 이세영 기자,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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