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정의 기판이〉
〈밤나무정의 기판이〉
강정님 지음/푸른책들·12000원 인터넷 포털에서 ‘밤나무정’을 검색해보았다. 강원 강릉·원주, 충남 천안, 전남 해남 등에 그 동네가 있단다. 소설 <밤나무정의 기판이>의 배경인 전남 나주의 밤나무정도 실제로 존재한다.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곳이면 이름 붙여졌을 흔하디 흔한 동네일 것이다. 작가 강정님씨가 나주에서 태어났으니 이 소설의 공간은 그의 고향인 셈이다. 그는 작품 끝에 덧붙인 ‘작가의 말’에서 “어릴 적에 내가 살던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마을은 내 마음 속에서 점점 커져갔습니다…이곳은 내 고향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향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가 9년 전에 내놓은 첫 동화집 <이삐 언니>의 배경도 밤나무정이었다. 올해 일흔넷인 노작가의 창작 동기는 애틋한 고향사랑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50년대 중반이다. 작가가 1937년에 태어났으니 그가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풍속이 고스란히 소설에 담겨있다. 처갓집 동네청년들이 ‘포졸’을 가장해 혼례를 마친 신랑의 발바닥에 가혹하게 매질하는 모습, 정월대보름 쥐불놀이를 하다가 맞닥뜨린 다른 동네패들과 돌싸움을 하는 광경 등 그때 그 지역의 문화는 생경하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다. 또 아들에 집착하는 지독한 남존여비 사상, 그리고 인민군과 국군이 교대로 다녀가면서 부역자가 참살당하는 한국전쟁의 기억도 자연스레 그려졌다.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캐릭터는 기판이 엄마인 안골댁이다. 본명은 키가 작아 김쪼깐녜. 홀아버지를 끝까지 모시려 해 효심 깊은 막내딸로 ‘잘못’ 알려져 우애 좋은 3형제집에 둘째 며느리도 들어간다. 그러나 어렵사리 되찾은 집안 땅을 차지해버리고, 시동생 부부를 위해 마련된 새집에 자기네 세간을 옮겨놓고 “짐을 빼라 하면 목을 매겠다”고 을러대는 ‘악녀본색’을 드러낸다. 슬하에 딸만 두게 되자, 아들만 낳은 손윗동서를 시기하다 영험하다는 동네 정화수를 얄팍한 술수로 ‘독점’해 낳은 아들이 기판이다. 안골댁은 기판이를 향해 맹목적인 모성애를 발휘하지만 기판이의 인생은 어째 순탄치가 않다. 인과응보일까. 어미가 저지른 악행의 업보는 고스란히 기판이를 겨냥한다. 시골마을 풍경의 구체적인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는 읽는 맛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군데군데 보이는 오자는 옥의 티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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