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장정일
장정일, 10년만의 장편 ‘구월의 이틀’
90년대 한국 소설의 전위를 치닫다 문제작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로 필화 사건을 겪기도 했던 장정일. 1999년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보트하우스> <중국에서 온 편지> 등 세 편의 소설을 잇따라 내놓은 뒤 소설적으로는 오래도록 침묵을 지켜 온 그가 10년 만에 새 장편 <구월의 이틀>(랜덤하우스 펴냄)을 발표했다. 그 10년 사이에 그는 <삼국지>를 다시 쓴 10권짜리 대작 <장정일 삼국지>(2004)를 내놓기는 했지만, 그것은 역시 문학의 본령에서는 조금 벗어난 작품이었다.
류시화 시인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구월의 이틀>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초부터 1년여의 시기를 배경으로 두 대학 신입생 금과 은의 성장통을 다룬다.
광주 출신으로 진보적 성향을 지닌 금, 부산 출신으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은은 이념적으로는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도 끈끈한 우정을 바탕으로 혼란과 모색의 청춘기를 함께 통과한다. 장정일씨는 “한국에는 제대로 된 우파가 거의 없었던 탓에 주인공이 좌파 및 예술가로 성장하는 소설만 있었다”며 “은을 통해 구우익의 친일·친독재 원죄와 뉴라이트의 좌파에 대한 원한에서 벗어난, 순수하고 건강한 우익 청년의 탄생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광주·부산…배경 다른 03학번 두 청춘
성·이념 등 ‘통과 의례’ 거치는 성장소설 소설은 같은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와 국어교육과에 합격한 금과 은이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금의 아버지는 광주의 시민운동가에서 참여정부의 청와대 보좌관으로 발탁되었고, 부산에서 사업에 실패해 낙망해 있던 은의 아버지는 수백억대의 자산가인 큰형이 미국으로 잠정적인 이민을 떠나자 그의 서울 집을 지키게 되었던 것. 두 가족이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그곳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진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모습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던 젊은 부부와 일단의 노인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은 젊은 부부에 대한 노인들의 일방적인 폭언과 폭력이었는데, “빨갱이들 세상이 되니 좋니?” “북한에나 가서 살아!”라고 퍼부으며 급기야 식판의 음식을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아빠에게 끼얹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 사건은 금과 은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준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두 청년은 각자 성적인 탐색과 모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금은 저보다 나이가 갑절이나 많은 신비한 여인 반고경을 만나 한껏 성적 열락에 빠져들고, 은은 어느 전시회에서 보았던 ‘환영의 소녀’를 다시 만나고자 화랑을 순례하던 중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확인하게 된다. 은뿐만 아니라 뉴라이트의 이론가 격인 은의 작은아버지, 그리고 구라이트를 대표하는 ‘거북선생’이 한결같이 동성애자일 뿐만 아니라, 금 역시 반고경과 헤어진 뒤에는 은과 두 번에 걸쳐 관계를 맺는 등 양성애자로 그려진다. 여기에다가 은이 벌거벗은 반고경을 혁대로 내리치는 등의 장면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나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같은 장정일씨의 앞선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문학 지망생이던 은이 우익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꾸고, 정작 정치인을 꿈꾸었던 금은 아버지의 자살 이후 거꾸로 문학으로 삶의 방향을 튼다는 설정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의 작가 지망생과 은행원의 뒤바뀐 인생 행로를 떠오르게 한다. 나중에서야 화가로 밝혀진 반고경이 ‘보트하우스전’이라는 자신의 전시 아이디어를 <보트하우스>라는 ‘삼류 작가’의 소설에서 얻어 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자학적 유머도 접할 수 있다. 은을 통해 제대로 된 우익의 탄생을 그려 보겠노라는 작가의 의도가 소설에서 충분히 살아난 것 같지는 않다. 이념의 벽을 사이에 둔 두 청년의 갈등과 화해 역시 좀더 치밀하고 본격적으로 그려질 필요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며 각자 진보와 보수의 팻말을 든 채 헌법재판소 앞에서 마주친 금과 은이 팻말을 팽개친 채 서로를 끌어안는 결말이 다소 공소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성·이념 등 ‘통과 의례’ 거치는 성장소설 소설은 같은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와 국어교육과에 합격한 금과 은이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금의 아버지는 광주의 시민운동가에서 참여정부의 청와대 보좌관으로 발탁되었고, 부산에서 사업에 실패해 낙망해 있던 은의 아버지는 수백억대의 자산가인 큰형이 미국으로 잠정적인 이민을 떠나자 그의 서울 집을 지키게 되었던 것. 두 가족이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그곳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진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모습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던 젊은 부부와 일단의 노인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은 젊은 부부에 대한 노인들의 일방적인 폭언과 폭력이었는데, “빨갱이들 세상이 되니 좋니?” “북한에나 가서 살아!”라고 퍼부으며 급기야 식판의 음식을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아빠에게 끼얹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 사건은 금과 은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준다.
〈구월의 이틀〉
문학 지망생이던 은이 우익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꾸고, 정작 정치인을 꿈꾸었던 금은 아버지의 자살 이후 거꾸로 문학으로 삶의 방향을 튼다는 설정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의 작가 지망생과 은행원의 뒤바뀐 인생 행로를 떠오르게 한다. 나중에서야 화가로 밝혀진 반고경이 ‘보트하우스전’이라는 자신의 전시 아이디어를 <보트하우스>라는 ‘삼류 작가’의 소설에서 얻어 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자학적 유머도 접할 수 있다. 은을 통해 제대로 된 우익의 탄생을 그려 보겠노라는 작가의 의도가 소설에서 충분히 살아난 것 같지는 않다. 이념의 벽을 사이에 둔 두 청년의 갈등과 화해 역시 좀더 치밀하고 본격적으로 그려질 필요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며 각자 진보와 보수의 팻말을 든 채 헌법재판소 앞에서 마주친 금과 은이 팻말을 팽개친 채 서로를 끌어안는 결말이 다소 공소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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