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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신자유주의 20년…라틴아메리카는 좌파 붐”

등록 2009-11-05 21:31

이성형 서울대 교수
이성형 서울대 교수
‘대홍수’ 쓴 이성형 교수




역사적 관점서 다양한 현안 분석
“카푸치노 좌파 정부 당분간 득세”

사치와 방탕을 사랑했던 프랑스 왕 루이15세는 과도한 세금 징수로 원성을 사더니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과 7년전쟁의 잇따른 패배로 아메리카와 인도의 광대한 식민지를 잃었다. 민심이 들끓고 혁명의 기운은 무르익어갔지만 왕은 태평스러웠다. “나 죽은 뒤에 대홍수가 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요.”

이성형 서울대 교수가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에 관한 연구서 <대홍수-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그린비)을 출간했다. <라틴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에 이어 7년 만에 내놓은 ‘라틴아메리카 연작’인 셈인데, ‘대홍수’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 범상치 않다.

“최근 라틴아메리카를 뒤덮은 변화의 물결을 ‘대홍수’에 비유했습니다. 당대의 정책이 10년, 20년 뒤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하지 않고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쇼크 처방을 앞다퉈 시행했던 1980~90년대 신자유주의 집행자들의 단견을 비꼬는 의미도 담겨 있지요.”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실험에서 쿠바의 경제개혁, 콜롬비아의 마약전쟁, 칠레·브라질·아르헨티나의 전력·가스산업 민영화, 그리고 남미국가연합의 미래까지,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현안을 각론적 차원에서 다루지만, 분석의 포커스는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정치적이고 사회·경제적인 결과들에 맞춰져 있다. 이 교수는 특히 지난 2006년 절정에 이른 좌파 연쇄 집권의 동력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패에서 찾는데, 좌파정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행위는 사실상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투표’였다는 것이다.

“‘눈물의 계곡’을 지나면 빵과 우유와 치즈가 있다는 게 신자유주의 정부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없는 거예요. 빵을 주긴커녕 경제난이 가중돼, 갖고 있는 접시마저 내다 팔아야 할 판입니다. 그러니 ‘속았다’ 싶은 거죠.”

또하나의 동력은 좌파들의 자기 변신이다. 1970~80년대의 급진적 이행전략을 폐기하고 세계화와 정치적 다원주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중도좌파로 탈바꿈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유럽식 사회민주당으로 변신한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단적인 예다.



〈대홍수〉
〈대홍수〉
“라틴아메리카 좌파들도 군정을 거치고 동구권 붕괴를 경험하면서 급진적 요소가 탈색됐습니다. 70~80년대 좌파가 ‘에스프레소 좌파’였다면, 요즘은 ‘카푸치노 좌파’예요. 일종의 ‘중도 수렴’ 현상입니다.”

이 교수는 좌파 정부의 ‘붐’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경제상황과 국제적 역학관계 같은 안팎의 조건들이 좌파 정부의 연임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광업, 식량 부문에 특수가 있습니다. 중남미 경제의 큰손으로 등장한 중국과 인도가 금융위기의 충격을 완충하면서 수출과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부시 집권 8년 동안 중동과 아시아에 집중하느라 이 지역에 힘의 공백이 발생한 것인데, 그사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의 결집력이 강해진 것이죠. 이런 점들이 집권 좌파의 연임에 호재가 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이 교수가 줄곧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이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문제점과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정치적·이념적 반대에 매몰되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가 고수한 역사적·현실주의적 입장 덕이다.

이런 균형감각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을 평가하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휘되는데, 이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차베스를 “베네수엘라 역사 속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차베스가 왜 등장했고, 열광적 지지와 혐오가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의 정책과 발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근현대사라는 맥락 속에서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바라본 차베스는 ‘두 얼굴의 영웅’이다.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그랬습니다. 차베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요. 잃어버린 볼리바르의 이상을 추구하는 해방자의 얼굴, 제도를 무시하고 개인적 캐릭터로 승부하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의 면모가 차베스에겐 다 있습니다. 한국 진보진영 일각에선 차베스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엔 침체된 국내 사회운동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과거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 교수는 지난해까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서 가르치다 석연찮은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지난 7월부터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서 인문한국(HK) 교수로 재직중이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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