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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진화론 품은 다윈의 고뇌 낱낱이

등록 2009-11-20 19:26수정 2009-11-20 19:28

〈다윈 평전〉
〈다윈 평전〉
‘종의 기원’ 초고 비밀공책에 꼭꼭
“무신론자” 매장 두려워 20년 침묵
불굴의 의지로 ‘위험한 사상’ 실토




〈다윈 평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제임스 무어 지음·김명주 옮김/뿌리와이파리·5만원

아이러니. 찰스 다윈(1809~1882)의 삶은 낱말 하나로 모인다. 예민하고 나약한 온정주의자였지만 피로 물든 생존투쟁 이론을 내놓은 사람. 확고한 과학자이면서 ‘전기 사슬’을 몸에 휘감는 돌팔이 치료를 믿은 사람. 칸트 못지않게 시계 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자연사에 우발성과 우연이라는 개념을 불어넣은 사람. 시골 교구목사가 되려는 꿈을 지녔으나 ‘불가지론’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 흑인을 열등하다 보았지만 노예제를 혐오했던 사람.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겼지만 평생 아내 에마를 존경했던 사람. 광적으로 연구에 매달리는 열정이 있었지만 구토와 불안 등에 시달리며 살아생전 골골했던 사람. 그리고 끝내 이리 고백했던 사람. “나는 종이 영구불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의 확신합니다(이것은 살인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20세기의 토템’이라 일컬어질 만큼 혁명적 사상을 내놓은 이가 자신을 살인자에 견준 까닭은 무엇인가.

이처럼 뜻밖에도 역설과 의문투성이인 다윈의 삶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와 제임스 무어(영국 개방대학) 교수는 ‘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초상’으로 극세밀화처럼 보여준다.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지은이들은 이렇게 밝혔다. “정말이지 무엇이, 잃을 게 너무나도 많은 한 존경받는 신사를, 그 많은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하는 연구로 몰아갔을까? 그 무엇은, 위험의 감수를 가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 어떤 뿌리 깊은 추동력이어야만 한다.”

이전에 나온 다윈의 전기들이 비글호 항해 시절의 묘사, <종의 기원>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문학적 서술의 특징, 진화론의 인류사적 가치 등에 현미경을 들이댄 뒤 그를 영웅에 가깝게 서술했다면 이 책은 이것들을 두루 아우르되 ‘인간 다윈’을 복원하려 애썼다.

숨지기 3년 전인 1879년의 다윈.
숨지기 3년 전인 1879년의 다윈.
기록으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그렇겠지만, 다윈의 삶은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에 적절한 필연과 우연의 훌륭한 조합처럼 읽힌다. 아버지에게 떠밀려 공부한 의학을 작파할 무렵 집어든 책이 그의 할아버지가 쓴 의학서 <주노미아>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마음과 몸이 연결되어 있으며 생물은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진화론이라는 성체로 가는 첫 감수분열인 셈이다. 삶의 전환점이 된 비글호 항해에서 만났던 ‘완전한 야만인들’은 그에게 근본적 물음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 대목에서 다윈의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외가인 웨지우드 가문의 자유주의 성향이었다. 인종을 떠나 인간이 수평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믿음은 진화론으로 향하는 감수분열을 재촉했다. 이러한 생각과,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맬서스의 <인구론>, 자신이 채집한 종과 화석에 대한 분석 등이 어우러져 서른 살 안팎의 다윈은 “종을 가로막는 생명력 따위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생명의 기원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불규칙하게 갈라져 나오는 ‘계통수’ 아이디어도 얻는다. 그것은 충격적인 상대적 관점이었다.

하지만 런던의 과학계에서 다윈은 속내를 밝히지 못했다. <종의 기원>의 초고를 비밀공책에 얼추 적어놓은 뒤 ‘이중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공개할 경우 단박에 무신론자로 내몰려 ‘사회적 매장’을 당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뼛속까지 부르주아였던 다윈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 그러니 “공식석상에서는 미소를 짓고 사적으로는 비웃는 정신분열증적인 태도”만이 유일한 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다윈은 토리당 국교회와 신학의 오만에 더욱 염증을 느낀다. 그것은 인간의 극단적 우월주의에 대한 분노였으며, 그 뿌리엔 자유주의와 과학적 객관주의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침묵’은 20년간 이어진다. 당시 정권을 잡은 토리당은 국교회와 결탁해 ‘신을 팔아먹는다’는 비난에 맞닥뜨렸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이론을 극단적 진화론자들이 국교회 성직자들을 공격하는 ‘전가의 보도’로 휘두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다윈의 몸을 무너뜨릴 만큼 극심했다. 그리고 신을 부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상’을 자신이 품고 있다는 죄책감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가 평생 불안장애에 시달린 이유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종의 기원>에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 “앞으로 인류의 기원과 역사가 환하게 밝혀질 것이다”라는 문장밖에 없다.

책의 끝머리에 이르면, ‘정신의 허리’를 결코 굽히지 않은 한 사람의 초상이 또렷해진다. 그것은 불굴이다. 다윈이 고뇌하는 진화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타고난 사회적 배경과 과학적 진실 사이의 괴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크레바스처럼 삶 곳곳에서 그를 ‘암연히 수수롭게’ 했다. 그렇게 역설과 모순을 가득 싣고 곡류하는 다윈의 삶이 참고문헌을 빼고도 1100여쪽(한국어판)에 담겼다. 그러니 첫 문장은 틀렸다. ‘의지의 무게’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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