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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생각 주인’ 찾는 야경꾼의 시대 외침

등록 2009-11-27 20:30

‘생각 주인’ 찾는 야경꾼의 시대 외침
‘생각 주인’ 찾는 야경꾼의 시대 외침
‘상식 옹호자’ 홍세화 새 에세이
존엄성 위협하는 물신사회 비판
‘내 생각 지키는’ 희망연대 제안
〈생각의 좌표〉
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고 그 근거인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로 잡문들을 묶어 책을 낸다.”

〈생각의 좌표〉
〈생각의 좌표〉
언론인 홍세화씨는 새 책 <생각의 좌표> 서문의 첫 문장을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적었다. 다시 곱씹어보면, 2009년의 한국사회는 절망투성이라는 얘기다.

파견근무를 나갔다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어쩔 수 없이 23년을 눌러앉아야 했던 프랑스 파리.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과 막연함으로 청춘을 보냈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이곳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양분이 된다.

그런 점에서 그가 밝히는 프랑스에서의 에피소드, 유럽 사민주의 국가와 우리나라의 비교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백지를 나눠주면 유럽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쓰는데 우리나라 학생은 무언가를 외우려고 그 위에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쓴다. 유럽의 학교에서는 “사형제는 폐지돼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음 나라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는?”이라며 ‘객관식’ 문항을 만들어낸다. 국어·역사·철학까지 ‘줄을 세우기 위해’ 단순암기 과목으로 만들어버린 제도교육 시스템에서 아이들은 생각을 키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저 안보·숭미·경쟁이라는 지배세력의 논리를 주입한다. 그가 이 책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이유다.

이방인의 삶, 프랑스 생활 초기에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수중에 돈이 떨어진 것이다. 큰딸 수현이는 “왜 우유 안 사?”라고 물었다. 거리에 나앉을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데 계좌에 1만3000여프랑이 들어와 있었다. ‘주거수당’ 14개월분이 초기 심사를 거쳐 한꺼번에 입금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설령 그런 제도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병역의무를 마친 것도 아니고 직접세를 내본 적도 없다.” 그 시절에 프랑스에서는 이미 사회구성원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주거공간을 적어도 3평 이상 제공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인간’의 개념엔 세금도 안 낸 이방인이 포함돼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2009년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박 및 식사비를 월급에서 ‘까는’ 방식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최저임금의 보호막에서 내치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진보정당의 ‘무상의료 무상교육’보다 한나라당의 ‘감세’ 공약에 매력을 더 느낀다. 그 이유는 세금을 내고도 ‘내가 눈물나게 덕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가난한 사람보다는 소수의 부자한테서 더 큰 세금을 거둬 탄탄한 복지 정책을 수립하고, 교육·노동·주거·질병의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지금 유럽의 사민주의다. 그런 면에서 ‘수평적 정권교체’를 온전히 이룬 참여정부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최적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집필했다는 <진보의 미래>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노동의 유연화, 그것도 우린 할 수 있어’라고 놔버린 게 가장 아팠던 대목입니다”라고 그는 고백한다. 또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 내년까지 40% 올려, 그냥 색연필 들고 쫙 그어버렸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한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갔다.


글쓴이는 기득권 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주장은 “나에게 프랑스로 돌아가라는 말과 같다”며 쓸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면서 상식을 말하는 소수가 있다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이제는 ‘지금 여기’에서 몰상식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 한국에서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열성을 보이는 집단은 두 부류이다. 하나는 함께 교회에 가자는 사람들이며 다른 하나는 ‘조중동’을 구독하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명절 때 만나는 친척에게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으며, 식당 주인에게 ‘이 집 음식 맛은 괜찮은데 몰상식한 신문을 보시네요’라고 한마디 던지지 않는다 … 건강한 시민이라면 의지로 서로의 힘을 결집시켜야 하며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것을 우리는 ‘연대’라고 한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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