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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내시는 왕의 사설비서관 부인·입양자녀도 있었다”

등록 2005-06-02 17:32수정 2005-06-02 17:32

‘내시와 궁녀’ 쓴 박상진씨

비 내린 지난 1일 만난 그는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취재수첩에 그의 말을 재빠르게 적기도 전에 그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마구 늘어놓았다. “여의도에서 영등포로 넘어 가는 길, 샛강의 연못 옆에 오두막집으로 지어진 내시 시술소가 있었어요. 천둥번개 치는 날을 골라 시술했다고 하더군요. 내시에게도 처와 양자·양녀가 있었고 어엿한 족보도 있었죠. 행랑만 200칸이 넘는 집에 살며 권세를 누린 내시도 있었고요. 연산군에 충언을 고하다 죽임을 당한 이도 있었어요. 견습내시들은 위급 상황 때 왕을 업고 탈출하는 비상훈련도 했죠. 퇴직 궁녀들이 궁궐 밖에서 살았던 마을이 있다는 건 아시나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그만의 지식과 정보로 쌓일 대로 쌓여, 이제는 누군가한테 마구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 같았다.

“우리나라 내시와 궁녀만을 다룬 책으로는 처음”이라는 <내시와 궁녀­ 제왕의 그림자>(가람기획 펴냄)의 지은이 박상진(42·성균관대 박사과정·한국철학)씨는 “내시는 왕의 그림자였지만 왕의 사설비서관이라는 전문직업인으로서 그들만의 세계 또한 있었다”고 말한다.

내시와 궁녀는 사실 웬만한 사극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 사생활의 역사에 관해 알려진 바는 극히 적다. 현실 역사에서 늘 조연에 머물렀던 그들은 요즘 드라마에서도 늘 조연이다. “궁녀가 주인공인 드라마 <대장금>과 내시가 주인공인 안성기 주연의 영화 <내시>가 아마도 유일할 겁니다. 그렇지만 내시와 궁녀의 본격 사극이라고 보기는 좀 아쉽죠. 왕실, 종묘사직과 운명을 함께했던 이들의 생애가 조명받지 못하고 국내 연구물도 거의 없는 현실은 안타깝습니다.”

박씨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지만 이미 <짝짓기로 배우는 세계사> <한국의 로맨스> <에피소드로 본 한국사> 등 역사학의 틈새시장을 겨냥한 역사서를 6권 쓴 역사물 작가이며 드라마 <태조 왕건>의 보조작가였기도 하다. 또 서울 은평향토사학회 부회장과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는 향토사학자다. 지난 2003년엔 ‘북한산 내시 집단묘역(45기)’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그의 이런 경험이 <내시와 궁녀>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향토사학자로서 그는 내시 후손과 지인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내시·궁녀들의 묘역과 묘비를 답사했으며 내시의 일화를 담은 <내반원기>와 내시들의 개인문집,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 100여 종의 문헌과 자료를 2년여 동안 수집하고 분석했다. 역사물 작가답게 이 책에서 그는 역사적 사실들을 소설의 이야기 문체로 재구성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내시의 역사와 함께, 고려 충선왕을 귀양 보낼 정도로 위세를 떨친 고려인 출신의 원나라 환관 임빠이앤투그스, 연산군을 주색에 빠지게 한 김자원, 고자 검사에서 가짜 내시라는 사실이 들통나 처형된 내시, 목숨을 끊거나 바람난 내시의 아내들 등의 일화들이 담겼다. 또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의 부인이 된 기황후, 나라에 큰 가뭄이 들면 결혼 못 한 여인의 한을 푼다고 시행됐던 일부 궁녀의 방면제도, 명나라와 일본에 간 조선인 궁녀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구중궁궐의 숨은 권력자이면서 왕의 수족으로서 육체적 결함과 마음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갔던 내시와 궁녀에 관한 본격 역사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밝힌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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