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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름답다…생명분자 ‘질서의 총화’

등록 2009-12-04 19:29

〈생명의 미학〉
〈생명의 미학〉




〈생명의 미학〉
박상철 지음/생각의나무·1만3000원

‘어느 생화학자의 뜻으로 본 생명’이라는 부제를 단 책 <생명의 미학>은 박상철 서울대 의대 교수(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가 30년 넘게 생화학자로서 세포 안의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무쌍하되 정교한 생명현상을 보며 느껴온 경이와 감동을 가득 담고 있다. 부분(생체분자)과 전체(생명체)가 어우러져 “통일성, 완벽성과 조화성”으로 빚어내는 생명의 세계를 마주하는 지은이의 태도는 예찬과 전율이다. “생명과학 연구에 종사해오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명현상의 질서정연함을 차차 깨달으며 나는 숨이 막히는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이 독특한 것은 지은이가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생화학의 연구 주제를 쉽게 풀어 전하면서도 생체분자와 생명체의 세계를 불교와 동양 고전 사상으로 풀어 다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포 안에서 늘 변함없이 펼쳐지는 생체분자들의 원리는 순서(질서), 지조, 안분(절제), 협동, 화생(변화)이라는 다섯 가지 덕목으로 정리돼 ‘생명의 삼강오륜’으로 불리는가 하면, 노자의 ‘무위’나 원효의 ‘원융회통’ 같은 철학이 생화학자의 시선에도 포착된다.

지은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발짝 더 나아간다. 그는 생체분자들의 생명 세계를 실험실에서 끄집어내어 현실의 우리 인간사회에 투사한다. 생체분자들은 사회의 구성원이며 생명체는 사회다. 사회를 생물유기체에 비유해 가치, 규범, 질서를 말하는 ‘사회유기체설’을 쉽게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텔링이다.

디엔에이(DNA)와 유전자, 호르몬과 수용체, 항원과 항체들이 저마다 제자리에서 제때에 제 기능을 정확히 수행한다. 분자들은 제짝을 기다려 만나고, 결합해 반응하고, 헤어져 흩어진다. 그러면서 작은 우주인 하나의 ‘유기적 전체’가 완성된다.

지은이가 꿈꾸는 이상사회인 ‘바이오토피아’는 이처럼 부분과 전체가 완벽하고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회다. 분자들이 보여주는 생명의 ‘효율성’은 부러움의 대상이며 ‘공동체의 삶’은 가장 큰 덕목이다. 부분은 공동체의 온전한 삶을 위해 존재하면서도 서로 종속의 관계를 이루지 않으며 ‘대등한 독자성’을 지닌다.

정색을 하고 책을 읽으면, 생체분자들한테서 인간이 좇아야 할 가치와 덕목을 찾으려는 일은 비약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생화학자의 뜻으로 본 생명’이라는 에세이로 읽는다면, 독특한 은유와 유비의 상상력에 빠져들 수도 있다. 책에는 수십년 동안 생체분자의 관찰자로서 쌓아온 생화학 지식이 있고, 실험실에서 철학과 묵상을 계속해온 과학자의 세상 읽기 방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노화연구 전문가인 지은이가 ‘늙음’에 대해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그는 노화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환경 적응의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해 보여준다.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에다 나쁜 자극을 가했을 때에, 젊은 세포는 쉽게 사멸했지만 늙은 세포는 오래 버티며 강한 저항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실험 결과들은 그 근거의 하나다. 박 교수는 ‘늙으면 죽는다’라는 결정론적 시각은 ‘노화현상의 본질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다’라는 적응론적 시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고령사회에선 예순 살 이후에 2차 의무교육으로서 ‘생애완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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