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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 ‘헌재’ 24시

등록 2009-12-11 21:04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 ‘헌재’ 24시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

20여년 전에 미국의 한 글쟁이는 선언했다. “뉴저널리즘이 문학의 주류 자리에서 소설을 지워버릴 것이다.” 뉴저널리즘에 대한 설명을 잠시 미루자면, 기사가 소설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한 기자가 있었다. 법원과 검찰이 취재처였다. 매일 기사를 대여섯 개씩 쓰면 하루가 갔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재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등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재미는 있었다. 그렇게 6년을 살았다.

그러다 미국 기자 밥 우드워드(워터게이트 특종기자)가 법원을 다룬 <지혜의 아홉 기둥>에 들렸다. 원고지 8장에 담을 수 없는 대법원의 진짜 모습이 있었다. 흑인은 백인과 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지 등 보통 사람의 삶을 좌우할 문제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파헤쳤다. 그날부터 법조기자는 머리에 ‘생선가시’가 박혔다. 생선가시는 두 개였다. ‘사건의 전모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 ‘내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수십 명의 법조기자가 있었다. 그러나 탄핵심판이 끝나자 그걸로 끝이었다. 소수의견은 왜 공개되지 않는지, 형식과 의전을 중요시하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 발표 때 3분34초 늦은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법조기자 이범준씨는 사표를 던지고 ‘법조 전문 취재작가’가 됐다. 기록을 1만장 넘게 읽고 100시간 넘게 인터뷰해 쓴 책이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이다. 법조 4부작의 첫 작품이다. 톰 울프의 주장에는 ‘기사에서 묘사, 시점 변환 등 다양한 소설의 기법을 사용할 것’이 전제돼 있다. 밤늦은 기자실에서 최승자와 황동규를 읽던 지은이의 문장이 소설만큼 재밌다. 결과로만 보자면 그는 생선가시를 조금 뽑은 것 같다. /궁리·2만원.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진보정당, 희망의 방아를 돌려라

〈한국진보정당운동사〉


〈한국진보정당운동사〉
〈한국진보정당운동사〉

지난 10·28 재보궐선거 결과는 진보정당의 한계 또한 뼈저리게 드러냈다. 특히 경기 안산상록을에서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이 함께 지지한 후보는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내년 지방선거에서 과연 진보정당이 무슨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우려하게 만들었다.

‘행동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인 성공회대 조현연 교수의 <한국진보정당운동사>는 해방 이후를 ‘역사적 단절기(박정희 체제 붕괴까지)-정치적 모색기(1980~1987)-정치적 실험기(1988~1996)-독자적 정립기(1997~2004)-새로운 모색기(2004년 총선 이후)’로 나누어 굴곡 많았던 한국진보정당운동을 통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에 해당하는 6장 ‘진보정당, 새로운 희망의 언어가 되기 위하여’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앞서의 ‘우려’와 무관치 않다. 민주노동당 형성에도 정책적 측면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조 교수의 처방은 과연 어떨까? 결론적으로 조 교수는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못 돌린다”며 “대안적 진보정당이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특히 그중 헤게모니 그룹)의 행태로 볼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통합을 통한 활로 모색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 내부에서 재통합 목소리가 여전히 높음을 고려할 때, 조 교수의 처방은 다양한 논의를 위한 촉매가 될 듯하다. /후마니타스·1만5000원.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원조 골리앗’ 다윗 친구를 찾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 이갑용(52)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별명이다. 1990년 82m의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파업투쟁을 벌이면서 붙었다. 기실 그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사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당시 노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이 투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골리앗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위대한 투쟁으로 기록되었지만, 승리했기에 위대한 투쟁으로 기록되고 싶었던” 이유에서다. 하여, 그는 말한다. “이제는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되고 싶다. 더는 외롭고 싶지도 않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다시 시작하고 싶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는 “노동조합도, 단체교섭도, 아무것도 몰랐던” 이갑용 전 위원장이 1984년 현대중공업의 한 노동자에서 해고노동자로 살고 있는 2009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증언록이다. 현대중공업 위원장, 민주노총 위원장, 울산동구청장을 거치면서 겪은 고난과 배신, 눈물의 현장기록이기도 하다. 알 만한 노동운동가들의 이면을 실명비판으로 거침없이 담기도 했다.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지은이는 “후배들에게 작은 실무교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떻게 분배정의를 이뤄냈고, 사회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밝힘과 동시에 “동네북”처럼 비난받는 민주노총을 살리고 싶은 뜻도 있었다고 했다. /철수와영희·1만5000원.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한홍구 교수와 한국근현대사 산책

〈한홍구와 함께 걷다〉

〈한홍구와 함께 걷다〉
〈한홍구와 함께 걷다〉

후덕한 풍채를 봐선 그다지 걷기를 즐길 것 같지 않은 이 남자, 새로 쓴 책 이름이 <한홍구와 함께 걷다>다. 걷기 열풍이라더니, 확실히 걷는 게 대세다. 그의 걷기는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시작해 경기 광주의 나눔의 집을 거쳐 다시 서울 현충원과 경복궁, 독립공원을 찍고 잠시 강화도에 머물며 숨을 고르다가, 수유리 4·19묘지, 남산과 명동성당, 서울 도심의 광장들을 숨가쁘게 내달려 인천 자유공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발길 머무는 곳 모두가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 장소들인데, 그는 이곳을 지난 10년간 자신이 가르치는 성공회대의 문화답사기행 수강생들과 함께 찾아왔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가 그렇듯 역사가 잉태되고 성장해온 물리적 공간들 역시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한민국의 최상급 국가성지 서울현충원이다. 이곳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군사반란의 주역과 희생자가 한데 잠들어 있고, 정부의 또다른 기념 대상인 5·18 광주민중항쟁에서 진압군 신분으로 희생된 군인들도 여럿 묻혀 있다. 글쓴이는 묻는다. “죽은 자와 죽인 자 모두에게 영광을 안겨 주는 그런 국립묘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전쟁에서 희생된 무수한 민간인의 죽음은 외면한 채 군인들의 죽음만 기리는 국가보훈 시스템의 맹점을 꼬집으며 근대국가와 국가주의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촉구하기도 한다. “왜 국가는 전쟁에서 죽은 젊은이들을 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할까? 죽어서도 군복을 벗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나는 목이 멘다.” /검둥소·1만4000원.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달콤한 도시’속엔 위기의 가족

〈 너는 모른다〉

〈 너는 모른다〉
〈 너는 모른다〉

가족이 되는 길은 얼마나 어려운가. 어느 날 한강변에 알몸 남자 변사체가 떠오른다. 변사체의 주인공은 누구? 소설은 시작된다. 아마도 그 석 달 전일 것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 서초구의 부유층 빌라, 그 집에 살던 열한 살 여아가 실종된다. 소설은 다시 시작된다. 그 집엔 남편(47)과 아내(40), 아들(20)과 어린 딸(11)이 살고 있다. 맏딸(24)은 집에 오지 않는다. 그 집 아들 김혜성이 화자로 나선다. 파삭파삭 부서질 것 같은 ‘가족’의 구성원들. 나의 아버지라는 이기적 당신. 너는 나를 보지 않는다, 나를 모른다. 나의 누나라는 징징대는 당신, 나는 너와 직면하는 게 두렵다. 새엄마 진옥영씨, 당신의 일정한 거리감이 나를 편안케 한다. 어느 날 내 이복동생으로 나타난, 언제나 제 방으로 숨어들던 김유지. 그 아이는 행복한 걸까?

소설은 가족이란 허울 아래 살고 있는 구성원을 번갈아 화자로 내세우며 그 가족의 현주소를 드러내 보인다. 그 현주소는 너와 나의 자화상일 수 있다. 그곳엔 서로 모르는 다섯 개의 섬이 있다. 동생의 실종을 주변에 알리지 말라는 아버지. 당신은 누구?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냉혹한 사설탐정이 끼어들고, 중국을 넘나드는 장기 밀매업자들이 활보한다. 한국이라는 ‘우리’만의 공동체에서 떠밀린 화교들의 삶이 전면에 등장한다. 각자 섬으로 살던 그들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웃지 않던 소녀, 친구가 한 명도 없던 열한 살 김유지는 과연 살아 있긴 한 걸까? <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 정이현씨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가족주의로의 회귀? 마음이 이리 아릿한데 꼭 그렇게만 봐야 할까? /문학동네·1만2000원.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삼국유사’ 재발견까지 600년 풍파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은 삼국유사를 다룬 책이다. 그런데 왜 삼국유사에 관한 책의 제목에서 일본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가문의 성을 들먹이는 것일까? 까닭은 삼국유사가 한국과 일본을 넘나든 곡절 많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군은 퇴각과 함께 조선의 서적들을 대량으로 훔쳐갔다. 이 가운데 삼국유사가 끼어 있었다. 삼국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을 제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바쳐졌다. 그는 이 책들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책을 좋아했던 막내아들 요시나오에게 줬다. 지금의 나고야인 오와리번의 다이묘였던 요시나오는 책의 목록을 작성해 관리했다. 삼국유사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오와리번이 교토의 일왕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삼국유사는 교토의 일왕에게 다녀온 뒤 더욱 귀중한 책이 되었으나 세상에서는 모습을 감췄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도 몇몇 유학자들이 다른 판본으로 읽었으나 내용이 황탄하다며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국유사는 세상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삼국유사의 화려한 외출은 일본 메이지 유신과 함께 찾아온다. 도쿄제국대학 초창기 국사학과 교수 쓰보이 구메조는 문과대학 사지총서 간행 때 삼국유사를 포함했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풍속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오리지널로 삼국유사를 주목했다. 이후 육당 최남선이 일본에서 삼국유사를 보고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일연이 처음 책을 쓴 지 600년 넘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던 삼국유사는 20세기 초 여러 풍파를 겪은 뒤에야 재발견됐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운기 지음/현암사·1만38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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