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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글 살려라” 벽력같은 호통 살아오네

등록 2009-12-18 19:32

2003년 충북 충주시 자택에서의 이오덕 선생. 맞다문 입에서 굳센 뜻이 읽힌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3년 충북 충주시 자택에서의 이오덕 선생. 맞다문 입에서 굳센 뜻이 읽힌다. 〈한겨레〉 자료사진
‘참글’ 일깨운 이오덕 선생 유고…‘더러운 종살이 말버릇’ 꾸지람
〈우리 글 바로 쓰기 4·5〉
이오덕 지음/한길사·2만원, 1만8000원

귀차니즘. 귀찮다는 우리말에 영어 표현인 ‘-이즘’을 달아 해괴한 뜻을 빚었다. 이쯤 되면 막말이다. ‘귀차니즘’처럼 홑따옴표에 가둔다 해서 낱말의 구린내를 덜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런 말들은 날개를 달고 세상을 떠돈다. 정크푸드라는 말도 쓰거니와, 이쯤 되면 정말 허섭스레기다. 말은 얼말이요, 글은 얼글이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요, 말글살이는 세상살이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의 창피한 꼴을 비춰보고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어려운 말, 남의 나라 글자말과 남의 나라 말법을 자랑삼아 쓰고 싶어 하는 미친 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 대접을 받고 살아갈 자격이 없다.”

〈우리 글 바로 쓰기 4·5〉
〈우리 글 바로 쓰기 4·5〉
이오덕(1925~2003). 43년 동안 교사로 일하면서 우리말 살리고 아끼는 일에 온 힘을 쏟았던 그의 ‘유고집’이 나왔다. 1989년 1권을 낸 <우리 글 바로 쓰기>의 4·5권이다. 일본말·서양말에 휘둘려 병든 우리말을 일으키고, 어린이들에게 진실한 글을 쓰게 해야 한다는 뜻이 1100여 쪽에 담겼다. 그는 마치 활을 들고 설자리에서 과녁을 겨누듯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거기엔 병아리 똥만큼의 망설임도 없다. 첫째로 일본말을 겨눈다. ‘우리말, 우리글을 오염하는 가장 큰 물줄기’라는 것이다. 들여다보면 이렇다. “예컨대 생의 야채 등이 좋은가 아니면 불에 익혀서 생명을 잃은 즉 동적 특질을 잃은 조리(調理)한 야채가 좋은가. 이것 등에 관해서는 후에 진술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먹물’(배운 이)들이 대개 이렇다는 설명이다. 되는대로 싸지른 글이요, 아직도 논문 따위에 넘치는 말법이다. ‘살아 있는, 채소, 곧, 들, 뒤, 말하게’로 고쳐 쓰면 쉽고 가지런하다. 이런 예가 책에 가득하다.

그다음은 영어다. 지금은 뜸하지만, 10년 전 <조선일보>는 여러 달에 걸쳐 ‘영어 공용어 논쟁’ 글을 실었다. 그때 복거일씨는 열린 민족주의 운운하며 영어를 공용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더러운 종살이 버릇’이라고 이른다. 글을 팔아먹는 이들이 글재주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을 지은이는 견디지 못했다. “이완용도 민족을 위한다고 했고, 이광수도 민족의 앞날을 위해 황국신민이 되자, 젊은이들은 황국의 군대로 영광스런 출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제아무리 정교한 논리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고 해도, 결국 그건 우리말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어려운 한자말을 즐겨 쓰는 버릇도 당장 버리잔다. ‘비상, 군무, 둔치, 금품수수, 호우, 예의주시, 반면교사, 이산가족 상봉, -으로부터, -를 통해, -에 의한, -적, 등’과 같은 말들을 왜 가려 써야 하는지 짚었다.

어린이를 잘 가르쳐야 하고, 어린이 글에서 어른이 배워야 한다는 글도 여럿 실었다. 고 권정생(1937~2007) 선생도 지은이의 뜻에 공감하며 머리글에 이런 시를 들었다. “제비꽃이 생글생글 웃는다./ 제비꽃이 하늘 보고 웃는다./ 제비꽃이 우에 조르크롱 피었노?/ 참 이뿌다.” 지은이는 이렇게 하잔다. ‘말이 되는 글을 쓰고, 입으로 하는 말로 쓰며, 귀로 들어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글을 정직하게 쓰자.’ 말글보다 삶이 먼저인바,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글을 쓸 줄 알아야 더 윗길로 오를 수 있다는 주장도 거듭한다. 예컨대 이런 글이다. “이슬이/ 코스모스 잎사귀에/ 두 줄로 졸로리 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니/ 낭낭낭 떨며/ 땅에 떨어져서/ 흙같이 팍삭 깨졌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쓴 시다. 지은이가 일본말·서양말·막말을 버리고 ‘참말’인 우리말을 살려 쓰자고 목울대가 벌겋게 되도록 되풀이하는 까닭은 하나다. 사람다운 글쓰기, 삶을 가꾸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세 가지 원칙을 꼽았다. ‘쉬운 말로, 우리말로, 살아 있는 말로 쓰자.’ 삶과 글의 관계가 이렇기 때문이란다. “나는 오늘 빨래를 했다./ 그런데 팔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강아지는 빨래를 하는 게 신기한가부다. 왜냐하면 고개를 삐딱삐딱거린다.” “빨래는 좋은 것이 아니에요./ 엄마의 손을 얼게 하는 빨래./ 나는 그 빨래가 싫어요./ 엄마는 그 빨래가 싫을 것이에요./ 양말 빨 때 때가 안 지워지면/ 엄마는 화가 나지요.” 두 편 모두 정직하고 깨끗한 말로 쓴 동시지만, 지은이는 첫 글을 윗길로 친다. 삶이 있느냐 없느냐가 글을 가르는 알짬이며, 둘째 글에는 삶이 없다는 게 지은이의 판단이다.

살아생전 지은이는 아름다운 우리말·우리글을 가꾸는 일에 ‘배운 이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동안 우리말을 망치는 데 으뜸이었으니 바로잡는 일에 애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관념의 세계, 책과 글의 세계에서 벗어나 ‘알몸의 거지’가 되어 진짜 글을 쓰란다. “벗들 돌아오라/ 거지가 되어/ 돌아오라”(고은 시, ‘역사로부터 돌아오라’에서)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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