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으로〉
이수지 지음/비룡소·1만5000원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거울 속으로 들어간 앨리스는 반사경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문득 헷갈린다. 자신이 실재인지, 거울 속 반사 세계 일부인지. 그때 속삭임이 들린다. “그가 지금 네 꿈을 꾸는 중이래. 저 꿈이 멈추면 너는 아무 데도 없어.”
<거울 속으로>의 소녀도 거울을 보고 혀를 내밀고 얼굴을 찡그리는 어린아이의 놀이에 빠져든다. 책의 전반부는 거울이 비추는 자신의 모습과 행복한 일치를 이룬다. 그런데 둘은 정말 하나였을까. 책 중간에 돌연히 드러나는 빈 페이지, 그러곤 줄곧 불협화음이다. 마침내 거울이 깨져 한쪽이 사라질 때까지.
<거울 속으로>는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던 작가 이수지씨가 새로 낸 그림책이다. 글 한 줄, 말 한 마디 없는 것이 작가의 그림책에서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래도 거울 앞에서 친구를 발견한 소녀의 외로움과 흥분, 다툼을 일러스트레이션만으로 전하는 재능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은이가 2002년 영국에서 북아트 대학원 과정을 마칠 무렵 졸업작품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그리면서 거울을 보는 앨리스 이야기를 1주일 만에 빠르게 그려낸 것이 <거울 속으로>라고 한다. 책의 이력을 좇아가자면 <이상한 나라의…> 그리고 <거울 속에서> 후속작인 <파도야 놀자>가 이탈리아, 뉴욕에서 주목받을 동안 이 책은 오랫동안 묻혀 있던 셈이다. 책 중간에 하얗게 비워놓은 2페이지는 책의 운명 같기도 하다.
비어 있는 책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몬 베유는 “못생긴 여자는 거울을 보고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거울과 불화하게 되는 걸까? 책의 말미에서도 소녀는 여전히 소녀의 모습이지만, 이질감에 치를 떨며 거울을 깨버렸다면 더는 소녀일 수는 없을 것. 그런 점에서 <거울 속에서>는 끝까지 이렇다 거드는 말 한 마디 없는 기이한 ‘성장동화’다. 여섯 살부터.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