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공항에서 일주일을〉 베스트셀러 <여행의 기술>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지난해 런던 히스로(히드로) 공항에 머물렀다.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 나보스키처럼 말이다. 물론 나보스키처럼 이 땅에도 저 땅에도 발을 딛지 못하는 처량한 무국적자 신세가 아니라 공항 터미널 5의 소유주로부터 공항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글을 써달라는 제안과 함께 쾌적한 공항호텔과 고급 식사까지 제공받는 기회였지만 공항의 부산하면서도 드라마틱한 풍경을 관찰하는 ‘국외자’라는 처지는 나보스키와 닮았다. 목적지가 없는 국외자의 공항 관찰기는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고 말했던 그 심리의 세밀하고 명상적인 기록이다. 수많은 종류의 화폐들이 전시되는 환전소에서 그는 너덜너덜해진 각 나라 지폐들이 거쳐왔을 그 내밀하고도 다사다난한 이력을 상상하고, 비행기의 이착륙 일정을 알려주는 스크린을 보면서 “(낯선) 목적지의 세부 정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초점이 맞지 않는 노스탤지어와 갈망의 이미지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여행의 매혹을 기술한다. 또 30년간 공항에서 승객들의 구두를 닦아온 사람의 인생에 대한 낙관과 어쩔 수 없이 노인과 임산부, 아이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봐야만 하는 보안요원과 책임자들, 현대의 계급구조를 하나의 정지된 풍경으로 보여주는 1등석 로비 라운지의 방문객과 청소부를 교차하며 그는 21세기 삶의 가장 압축된 공간으로서의 공항을 이야기한다. 정영목 옮김/청미래·1만800원.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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