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물고기〉
악마성마저도 받아들이는 운명적 사랑의 장송곡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자음과모음·1만1000원 권지예(사진)씨의 신작 장편 <4월의 물고기>는 순정한 사랑 이야기를 범죄 추리물에 버무린 독특한 소설이다. <러브 스토리>와 <양들의 침묵>의 결합이라고나 할까. 이런 기묘한 조합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방법론에 관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무언가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려 하다 보니 추리적 기법을 차용하게 되었어요.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작품 속에서 충돌하는 셈인데, 그 둘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소설의 남녀 주인공은 진서인과 강선우. 어딘지 비슷한 느낌에 둘 다 중성적인 이름이지만, 서인이 여자고 선우가 남자다. 소설가이자 요가 강사이기도 한 서인과 프리랜스 사진기자이며 대학 강사인 선우가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처음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소설의 전반부는 선남선녀의 만남과 매혹, 그리고 열정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심상하게 그려 나간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중반을 지나면서 두 사람의 사랑에는 어둡고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서인의 핸드폰과 이메일로 날아든 익명의 협박, 선우를 짝사랑하던 여대생의 실종, 선우의 과거를 안개처럼 감싸고 있는 비밀과 의혹이 서인을 불안과 의심의 지옥으로 이끈다.
권지예씨
“제 물음은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이런 남자를 운명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스스로 제 안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말하는 남자를 순정을 바쳐 사랑한다는 것이 나이브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여주인공이 정신적인 세계를 중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선우의 인격 장애가 어린 시절에 겪은 불행과 고통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인은 흉악한 살인자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 입은 영혼을 보듬어 안기로 한다. 그 결과가 자칫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모험이 될지라도 그는 운명의 부름에 응하고자 한다. 앞서 서인과 선우가 잡지 촬영을 계기로 처음 만났다고 했지만, 이쯤에서 사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 그들은 서인이 열여섯이고 선우가 대학생이던 시절 운명적으로 마주쳐 서로에게 끌렸으며 그 결과 ‘황홀하면서도 끔찍한’ 기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그들이 십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처음인 것처럼 다시 만나고 유예되었던 운명적 사랑을 불태운다는 설정이 작위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소설도 아닌 이런 우연이 어떻게 현실에서 가능한지 기가 막힐 뿐이었다”라는 소설 지문은 그런 정황을 가리키고 있음이다. 그러나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게 운명이라면 두 사람의 사랑에 운명이라는 관을 씌우는 게 부적절한 노릇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추리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 염려를 덜어 놓고 말해 보자면, 이들의 운명적 사랑은 결국 또 하나의 죽음과 더불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그러니까 이들의 사랑은 죽음을 무릅씀으로써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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