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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제 잔재의 ‘불편한 진실’

등록 2010-01-15 21:15수정 2010-01-15 21:20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
이순우 지음/하늘재·1만5천원

1899년 4월 서울의 새문(돈의문·서대문)에서 동대문 밖 청량리까지 전차가 개통됐다. 당시 ‘전기철도’ ‘전기거’ ‘전거’라고도 표현했던 전차는 조선인들에게 놀라운 근대의 문물이었다.

2006년 한국방송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은 이 전차 개통이 동양 최초였다고 보도했다. 그 근거는 일본 도쿄에서는 1903년에 전차가 처음으로 개통돼 조선보다 4년이나 늦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차 개통을 근거로 대한제국의 근대화 수준이 세계 열강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런 보도는 두 가지가 틀린 내용이었다. 서울의 전차 개통은 도쿄보다는 4년 먼저였지만 일본의 교토보다는 4년 늦었다. 따라서 동양 최초의 전차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었다. 더욱이 도쿄의 전차 개통이 서울보다 4년이나 늦어진 것은 도쿄의 근대화가 서울보다 늦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쿄에는 전차 대신 ‘철도마차’라는 값싸고 빠른 교통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전차로 서둘러 전환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이 보도는 이 사안에 대한 정확한 사실도, 속 깊은 진실도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인들은 근현대 일본에 대해 강한 반감과 열등감을 갖고 있고, 그것은 고대나 중세 일본에 대한 턱없는 우월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오래고 복잡한 감정 때문에 때때로 한국인들이 청맹과니가 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2008년 서울시가 대부분 헐어버린 서울시청 건물의 모양은 일제가 한양 복판에 아로새긴 ‘대일본’(大日本)이라는 글자의 ‘본’자에 해당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을 찾아보면 설계자는 그것을 ‘본’자가 아니라 ‘궁’(弓)자로 인식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이 지은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차분한’ 사실과 진실 찾기의 세번째 성과다. 앞서도 이 소장은 두 권의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을 뒤지다’라는 책에서 이런 ‘불편한’ 사실과 진실들을 찾아내 세상에 알려왔다. 이번 책에서도 그의 불편한 질문은 계속됐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이런 불편한 진실 외에 일제의 자취가 깊이 배어 있지만, 한국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들도 발굴해 썼다. 현재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경술국치의 현장인 ‘통감관저 터’, 경복궁이 아니라 남산 왜성대에 자리잡았던 첫 ‘조선총독부 터’, 인왕산에 새겨졌던 ‘동아청년단결’이라는 글씨, 하세가와 한국주차 일본군사령관의 관저였던 한국은행 뒤편 주차장, 조선 국왕과 조선 총독 사이의 거리를 좁혔던 청계천 ‘관수교’, 국회의원의 ‘세비’라는 표현, 인천의 ‘송도’라는 지명 등.

지은이의 미덕은 아무리 일제의 행위가 밉더라도 일제가 (잘못)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졌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근현대 역사에 가진 편견과 고정관념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지은이의 글은 어떤 언론인의 글보다도 저널리스틱하다. 동시에 그런 도전이 문헌과 현장에 대한 집요한 추적을 바탕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저널리스틱하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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