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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확실한 우주에 대한 확실한 사랑

등록 2010-01-22 20:39

〈원더풀 사이언스〉
〈원더풀 사이언스〉
생활에 숨은 ‘불확정 원리’ 예를 들어
경쾌하게 풀어 쓴 과학적 사고의 비밀
높은 과학 문턱 허문 시적언어 돋보여




〈원더풀 사이언스〉
나탈리 앤지어 지음·김소정 옮김/지호·2만2000원

지난해는 찰스 퍼시 스노(1905~80)가 ‘두 문화’ 강연을 한 지 50년 되는 해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마치 원수가 되어 헤어진 부부처럼, 등 돌린 채 각자의 길을 걷는 현실을 바꾸자고 주장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달걀이 단세포라고 말하면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헛똑똑이를 영어로 에그헤드라고 한다) 분명 달걀은 단 하나의 세포다. 달걀 껍질은 세포막이며 노른자위는 세포질(핵 포함)이다. 무정란에는 유전물질의 절반이 담겨 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큰 세포는 무엇일까. 타조 알이다. 크기는 가로세로 20×12㎝, 무게는 1.3㎏에 이른다. 하지만 비율로 따지면 타조는 뒤로 한참 밀린다. 가장 큰 알을 낳는 새는 키위나 벌새다. 어미 무게의 25%쯤 되는 알을 낳는바, 사람으로 치면 아기가 13㎏가량인 셈이다. 타조의 경우는 1% 정도다. 과학저술가 나탈리 앤지어(52)는 <원더풀 사이언스>에서, 지금도 두 문화 사이의 거리와 벽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세포막처럼 얇다는 것이다. 비과학자들에게 과학을 알려주기 위해 지은이는 많은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몇 가지 주제를 깊이 다루는 길을 골랐다. 1991년 퓰리처상을 받은 이답게 확률·척도·물리·화학·생물학·지질학·천문학을 경쾌하게 풀어낸다.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보다 훨씬 재밌고 친절하다.

과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다. 주기율표 따위를 외우는 건 중요치 않다. 어떤 생각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방식이 과학이므로, 과학을 안다는 것은 삶에 의미 있는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하는 힘을 얻는 것과 같다. “우주에 관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이마누엘 칸트) 과학적 사고는 비판적 사고인바, 수열 문제는 좋은 지침이 된다. ‘1, 3, 5’로 시작하는 수열이 있다. 다음에 어떤 수가 올까? 열에 아홉은 ‘7’이라고 답할 것이다. 틀렸다. 우리가 손에 쥔 정보는 수열이되 ‘1, 3, 5’로 시작한다는 사실뿐이다. 홀수를 늘어놓은 수열이라고 짐작하고 결론을 내는 것은 과학적(비판적) 사고가 아니다. 답은 하나가 아니다. ‘1, 3, 5, 3, 5’로 이어지는 수열일 수도 있고 ‘1, 3, 5, 5, 3, 1’처럼 나갈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것이다. 과학은 불확실함에 대한 확실한 사랑이며, 불확실한 진리에 접근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춤추는 로봇 강아지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나탈리 앤지어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춤추는 로봇 강아지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나탈리 앤지어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불확정성 원리’가 맞춤한 상징이다.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질량과 속도의 곱)을 ‘동시에 정확히’ 확정할 수 없다는 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이다. 측정하기 위해 빛(광자)을 쏘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영향을 받는다. 전자의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이다. 위치를 확실히 알수록 운동량은 불확실해지며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위치와 운동량의 관계는 확정이 아니라 확률에 머문다. 입자를 보는 즉시 입자의 모양이 왜곡되는 데서, 우리는 관찰이 필연적으로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각을 둔각으로 넓히면 이렇겠다.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여인은 달라진다. 눈동자에 내가 담긴다. 네 안에 나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장미가 장미로 있을 때는 그저 장미일 뿐이지만 연구의 대상이 된 장미는 시가 된다.” 과학은 ‘아름다운 왜곡’이다.

지은이는 책을 쓰기 위해 수백명의 과학자들한테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인용과 비유를 끌어온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화학의 결합(bond)을 말하며 제임스 본드(Bond)를 출연시키고, 물리학의 기본적인 네 힘(force, 중력·전자기력·강한핵력·약한핵력)을 설명하다 영화 <스타워즈>의 포스(force)와 연결한다. 재치 넘치는 서술이 책 읽기에 가속도를 붙인다. 과학이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독자에게 설득하기 위한 방편이다. 앞서 든 하이젠베르크의 일화가 좋은 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에서 강의를 해야 했던 하이젠베르크는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차를 빌려 타고 미친 듯이 달렸다. 결국 경찰에 잡히게 되었는데, 차를 세운 경찰이 하이젠베르크에게 물었단다. “지금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리신 건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 모르오. 하지만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소.” 불확정성 원리에 빗대 농담을 한 것이다. 지금 박장대소한다면 과학에 친숙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왜 우스운지를 전혀 모른다면 어쩌나. 모든 사람이 웃을 수 있는 날까지 과학을 친절히 설명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게 지은이의 다짐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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