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보(37·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씨
‘삼성공화국’ 분석 박사논문 낸 이종보 연구원
“힘의 차이 간과한 민주주의, 불평등 지속시킬 뿐”
“힘의 차이 간과한 민주주의, 불평등 지속시킬 뿐”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한 2005년 6월의 일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로 집권 민주세력의 한계를 자인했다. 왜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던 한국의 민주화는 한층 진전된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고 삼성이라는 대자본의 지배로 귀결했는가. 이종보(사진·37·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씨가 <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 지배’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규명하려는 것도 이 문제다. 말하자면 이 논문은 ‘삼성공화국’이란 현상을 국가·제도정치권·시민사회라는 민주주의의 제도 영역에서 진행되는 자본권력 대 민주화 세력의 경합과 각축이라는 틀을 통해 파헤치려는 시도다. 최근 논문심사를 통과한 뒤 책 출간을 준비중인 이씨를 3일 서울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왜 삼성에 주목했는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자본의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면 삼성을 보면 된다. 강압과 매수라는 전근대적 전략에서 담론·이데올로기를 통한 동의 확보라는 선진적 수단에 이르기까지, 지배의 모든 전략이 삼성에게서 드러난다.” -삼성의 지배전략이 제도정치권과 국가기구, 시민사회 영역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구사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을 통해 포획하거나 관료와의 대립구도를 활용해 주변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국가의 행정·사법 관료들 역시 매수·포획의 방식이 사용된다. 주목할 만한 건 대(對)시민사회 전략이다. 가능한 모든 전략이 동원되는데, 삼성 사회봉사단 같은 조직을 통해 시민사회의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건 기본이다. 학계·언론계·시민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해선 임원 특채나 사외이사 기용, 기금지원, 상찬사업 등을 통해 유인·포획하거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나 ‘2만달러 시대’ 같은 담론을 유포해 시민사회 내부의 동의를 확보하거나, 노조 세력에 대해선 강압과 파괴공작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엑스파일 사태나 경영권 편법승계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에서 보듯 대시민사회 전략이 전적으로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이다. 자본의 지배전략이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는 자본이 민중세력의 저항과 상호작용하면서 내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배블록과 저항블록의 모순은 심화되고 결국 정치·사회적 갈등은 의회의 영역을 넘어 사법기구로 확대된다. 최근의 ‘사법전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민주주의를 ‘테이블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테이블 민주주의가 삼성공화국을 불렀다는 얘기인가? “테이블 민주주의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세력조차 대화 테이블로 끌어앉혀 개혁의 방향성과 방법론을 논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꼬집기 위한 말이다. 이런 민주주의는 테이블상에 엄존하는 쌍방 간 힘의 차이와 불평등을 간과함으로써 결국은 지배와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다. 방법은 하나다. 기존의 형식화된 민주주의의 틀을 넘어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결합을 통해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야 삼성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날 희망도 생긴다.” 이세영 기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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