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식민의 삶, 욕망의 기록

등록 2005-06-09 15:36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br>
\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방독미감” “가정화합지우”

앞엣말은 ‘매독을 방지하고 느낌이 좋다’는 뜻이요, 뒤엣말은 ‘가정 화합의 벗’이란 뜻이니 바로 ‘곤도-무’ 곧 콘돔 광고문이다. 신문에 버젓이 실린, 이 ‘품위 있는’ 콘돔 광고는 요즘 얘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성 문화에 꽤 보수적이었던 1920~30년대 신문 지면에 종종 등장했던 광고다. 더 낯뜨거운 것도 보인다. “아무리 절대가인이라도 무서운 화류병(성병)에 걸리면 슬퍼진다”는 문구과 더불어, 매독 탓에 오똑했던 콧등이 뭉개진 여자의 충격적 얼굴 사진을 실은 성병약 광고 류는 때때로 전면광고까지 내걸며 그 시절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공창제와 기생제도를 사실상 식민지배의 도구로 유지했던 일제 강점기에 우울하고 서글펐던 식민의 시대상, 근대 조선인의 욕망과 유혹을 그 시절의 육성으로 고스란히 되살려주는 ‘신문 화석의 기록들’이다. 옛 신문광고는 이처럼 지면 한쪽에서 ‘하! 그 때 이런 것도 있었네’ 하는 신기함으로 발견돼 망각된 집단의 과거를 생동감 있게 증언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신문 기자인 김태수(42)씨가 3년 동안 일제시대의 신문과 잡지, 그리고 관련 연구자료들을 모으고 분석해 ‘신문광고로 본 근대 풍경’이란 부제를 단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황소자리 펴냄)를 냈다. 그가 캐낸 옛 광고들을 일제 강점기의 역사 이면에 뭇사람의 일상에서 “웃음 짓고 한숨 짓고 꿈꾸고 욕망하던 자잘한 삶의 모습들”을 담아낸다.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포켓트에 너흘 수 잇는 호화로운 식탁’
캐러멜에서 누드책광고까지 20~30년대 일상모습

%%990002%% 양반의 전유물에서 떨어져나온 기품 있던 기생들도 이제는 대중 서비스에 나섰다. 기생조합(권번)은 생존을 위해 ‘박리다매’ 전략으로 기생 서비스 정액요금을 정해 신문에 공시하고, 양반은 “개쌍놈도 (기생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을 개탄하던 시절이었다. ‘화류병’인 매독이 창궐했다. 조선총독부는 화류병을 ‘문명의 병’이라 하여 ‘조선의 장년자 중 50%가 성병에 걸렸으니 조선도 이제 문명국이 됐다’는 헛소리를 할 정도였다니까. 신문에는 화류병에 걸리면 “추부로 변하여 울면서 쾌락 없고 재미 없는 일생을 보내게 된다”는 엄포 전략의 광고가 자주 등장했다.

피눈물 나는 단발령 이후엔 ‘경제계의 대복음, 이발계의 혁명’을 내세운 바리캉 광고, 이발소들의 서비스 경쟁 광고, 모자 광고들이 잦아지고, 창씨개명의 민족적 울분이 가라앉은 뒤엔 ‘좋은 창씨는 자손까지도 혜택을 입게 된다’면서 ‘요금은 아모 데도 없는 특별할인’을 강조하는 ‘몰지각한’ 광고들도 등장했다.

그 때는 너무 달랐다

근대의 상징품목인 커피는 한때 ‘양탕국’으로 불리고 식민지 지식인·예술인들의 안식처로서 ‘끽다점’으로 불린 다방들이 종로에 막 개업 광고를 내던 시절이었다.

영어 열풍은 그 시절이 원조다. “영어는 출세의 자본” “영어 인푸레 시대!”를 내세우며 청년들에게 영어 스트레스를 주던 영어 통신강좌 광고는 오늘날에도 너무 익숙한 말투다. 영어 발음을 녹음한 레코드까지 부잣집 자제들한테 끼워팔았다니까.

%%990003%% 초콜릿과 캐러멜은 아이들의 입맛을 유혹했다. ‘포켓트에 너흘 수 잇는 호화로운 식탁’으로 광고됐다. 여성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장품은 ‘마음대로 아름답게 피는 위생상 유효한 무연백분’ ‘근대인의 향기로운 선물’로 등장했다. 근대 조선인을 혼비백산하게 했던 ‘쇠당나귀’ 자동차는 1920년대 들어 신문광고에 자주 등장하면서 기생을 태우고 유람을 즐기는 요즘의 오렌지족들도 등장해 사회문제가 됐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하자 광고주들이 앞다퉈 손기정 신드롬을 활용한 제품 광고에 나서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포르노그라피는 놀라울 정도로 그 때에도 많았다. “절세의 미인이 몸에 일사(一絲)도 부치 아니한 순진 나체사진이외다.” 누드사진 책 광고가 신문에 등장했다. 근대 의학이 들어오면서 남녀의 생식기, 성교법, 임신·피임법에 대한 의학서부터, <춘색 매력> <남녀의 밀화> 등 음담패설류 책 광고도 자주 눈에 띄던 시절이었다. 지은이는 “신문들이 천연덕스럽게 1면에 ‘빨간책’을 광고”했던 시대라며 “억압의 시대에 섹스산업이 흥한다는 통찰처럼 일제의 강압에 시달리던 조선 민중에게 성은 일종의 도피처가 아니었을까”라고 풀이했다.

광고는 역시 ‘뻥’이 심했다

짚신의 독점을 단박에 무너뜨린 고무신은 거침 없는 자신감으로 과장광고를 서슴지 않았다.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첨단기술의 쾌거를 내세운 광고도 눈에 띈다. 미끄럼 방지용으로 바닥에 물결무늬를 구현한 제품 광고는 “물결 바닥과 거북션표를 쥬의하시요”라며 자사 제품의 네 가지 특징으로 ‘일년 사용 보증, 버선에 뭇지 않는 것, 뒤축이 달치 안는 것, 가벼워 신기 편한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서구 술의 광고에도 과장은 이어진다. 포도주는 ‘출근 전 종업 후 이것을 잡수시면 체력이 증진하여 능률이 오르고 피로도 대번 풀립니다’라며 술을 보약으로 둔갑시켰고, ‘모던 보이’를 겨냥한 광고 공세를 펼치던 맥주도 이에 뒤질세라 “맥주는 술이 아니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그러면 무엇일까, 가로대 자양품이라”는 허풍을 떨었다.

오늘의 광고에 나타난 우리의 삶은 100년쯤 뒤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