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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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메리카의 역사는 1492년부터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아메리카 역사는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 것처럼. 그럼 1491년 이전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순수 야생의 땅이었을까?
미국의 르포 작가 찰스 만이 쓴 ‘이야기로 읽는 인디언의 역사’ <인디언>(오래된미래 펴냄)은 콜럼버스 이전에, 예컨대 “서기 1000년, 비행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 위를 여행”한다면 “창문 아래로 과연 어떤 풍경이 보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이야기 보따리를 연다. 창문 아래 광경은 흔히 생각하듯이 ‘원시 유목 인디언이 드문드문 흩어져 사는 순수의 땅’으로 오해하지 말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만일 그런 풍경을 상상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디언을 ‘순수의 신화시대’에 살았던 ‘고상한 야만인’ 쯤으로 여기는 편견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반대의 주장을 내건다. 인디언은 아메리카 대지에 독자적 문명을 이루고 있었음을, 최근 인류학·고고학·생태학·역사학의 새로운 발견들을 바탕으로 전한다.
새롭게 주목받는 학설을 따르면, 인디언은 순수의 땅에 살았던 낭만적 자연주의자가 결코 아니었다. 자연을 적극 개척해 홍수에 대비하는 흙둔덕을 쌓아올렸고 거주 공간을 마련했으며 둑길과 물길을 열어 운송과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반듯한 마을과 도시들이 곳곳에 건설됐으며, 물물교환뿐 아니라 천문학·수학·종교·문화의 교류도 이뤄졌다. 또 인도보다 1세기나 앞서 숫자 0을 발명했고 체계적 농경사회와 민주적 정치제도를 지녔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명을 일궜다고 한다.
그러던 문명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질병 때문이었다. 면역력이 거의 없던 인디언은 유럽인을 만나면서 여러 병에 시달려 130년만에 95%가 목숨을 잃는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겪어야 했으며 오래된 문명은 백인 역사의 의도적 외면 속에 말살됐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오래된미래 출판사 쪽이 지난해 12월 지은이의 출판대리인과 한국어판 출판계약을 영어판보다 일찍 맺은 덕분에 한국어판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다. 영어판은 8월 말 미국에서 출간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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