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
강신준 지음/길·1만5000원
문제는 ‘경제적 공포’다. “지금 우리는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인간적인 조건의 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비인간적인 조건의 회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이상한 시대에 와 있다.”(비비안 포레스테, <경제적 공포>) ‘비인간적인 조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이되, 타인(자본가)을 위하도록 예속된 노동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비인간적인 조건의 회복’이란 노동해야 살아남는 비정한 현실을 수긍해버리는 일이다. 일해도 가난하고, 과로사로 스러지는 노동자가 한해에 수백명씩 되는 현실. 이윤 창출의 주체인 노동자가 생산-교환-소비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혀 버둥대는 현실. 왜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부·富)는 온전히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가. 그 많은 가치는 다 어디로 갔는가. 부를 만드는 노동자 다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은 그것의 정체를 처음으로 분석한 책이다. 사라진 부의 경로를 추적하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제시한 게 <자본>이다. 그래서 <자본>은 노동자 계급의 ‘성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노동자들의 손으로 실현될 때 비로소 빛난다. 노동자들 자신이 생산한 가치를 스스로 되찾을 때 <자본>의 분석은 ‘완결’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자본>에 대한 논의는 정치와 만난다.
강신준(56) 동아대 교수가 쓴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은 이러한 마르크스의 <자본>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책이다. 강 교수는 1991년 <자본>의 한국어 번역본을 마무리한 뒤 <자본의 이해>(1994)와 <자본론의 세계>(2001)를 펴냈다. 원서의 난해한 내용 탓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대중들을 위한 작업이었다. 올해 6월 <자본>의 새로운 한국어판(전 5권)을 완간하기에 앞서 내놓은 이 책도 그런 대중화 작업의 하나다.
1875년 영국 런던에서의 카를 마르크스. 현실 부정의 목표는 미래 긍정에 있으며,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노둣돌은 ‘민주주의’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국제사회사연구소(IISH) 누리집
이 책의 핵심은 자본주의 변혁의 세 요소를 재구성해 전달하는 것이다. 모순된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체제를 긍정하며, 그러기 위한 이행 수단을 제시하는 게 지은이의 목표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된 현실은 공황에서 날카롭게 드러난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영원히 유폐된 것으로 보였던 마르크스가 귀환한 것도 바로 공황 때문이다. 경제학사에서 공황을 분석한 사람은 마르크스가 유일하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라는 <맨큐의 경제학>에는 공황이라는 항목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왜 공황이 일어나는가. 마르크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의 가치 증식은 … 사실상 생산의 내재적인 속박이자 한계를 이루는데, 이 속박과 한계는 끊임없이 신용제도에 의해 파괴된다. 따라서 신용제도는 생산력의 물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형성을 촉진하고 … 그와 함께 신용은 또 이런 모순의 강력한 폭발(즉 공황)을 촉진하고, 그럼으로써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촉진한다.” 공황은 대부자본의 신용 영역에서 발생하지만 대부자본은 가치의 생산에 기생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원인은 생산 영역에 있다. 마르크스는 생산 영역에서 생산의 모순과 한계를 찾아낸다. 생산의 확대가 결코 신용의 과잉 팽창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과, 생산된 상품이 판매되어야만 작동하는 생산-소비의 구조에서 그것을 가로막는 ‘내적 모순’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생산을 확대하려면 축적이 이뤄져야 하므로 자본가는 이윤을 모두 소비하지 않고 자본으로 재투자를 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소득은 억제된다. 그렇게 해서 생산이 증가한다. 그러나 늘어난 상품을 사야 하는 노동자는 구매력이 제한된다. 가치의 생산은 결코 무한히 팽창할 수 없으므로, 생산을 늘리면 늘릴수록 소비는 점점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급 불능이 벌어지면 공황이 찾아온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일어난 배경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가 만들어지고 분배되는 과정에 이처럼 ‘결정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공황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생산수단의 집중이나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자본주의적 외피와는 조화될 수 없는 시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외피는 폭파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런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은 자신에 대한 부정, ‘부정의 부정’(변증법)을 낳을 수밖에 없다. ‘생산의 사적 소유’인 자본주의에서 ‘생산의 사회적 소유’인 사회주의를 희망한다면, 남는 건 이행 수단이다. 지은이는 ‘욕망의 사회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택·노후·의료·교육 등 ‘사회적 임금’이 커지고 개별 자본가에게 받는 임금의 비중이 낮아지는 사회주의의 모습에 대한 암시가 <자본>에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길에 다다를 수 있는가. 해답은 민주주의에 있다고 지은이는 힘주어 말한다. “민주주의가 없이는 사회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사회화라는 과정이 없는 사회주의는 달성되지 않는다.” 재테크의 환상에서 벗어나,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민주주의의 확대에 매진하는 길만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게 <자본>의 알짬이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본>은 민주주의와 만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가 ‘자유민주주의’ 따위의 낱말 하나로 간단히 치워버릴 수 있을 만큼 과연 그렇게 명징한지를 톺아보게 한다. 문제는 ‘경제적 공포’를 넘어서는 ‘사회적 의지’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가파른 험한 길을 힘들여 기어 올라가는 노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가망이 있습니다.”
전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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