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국수가 없는 국수집이 있다. 손님들에게 “국수를 드시겠어요, 밥을 드시겠어요?”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밥을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국수집 주인장은 손님들이 “밥은 지겨우니 국수 좀 달라”고 말하기를 기다린다. 동인천역 인근 화수동에 위치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 이야기다. 며칠씩 끼니를 거른 이곳 손님들에게 국수는 요기가 될 수 없다. 특별히 준비한 돈가스도 인기가 없다. 노숙인들은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먹고 탈이 나더라도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 만우절, 민들레 국수집을 차린 서영남씨가 책을 펴냈다. 25년 동안 수사 생활을 하며 재소자·출소자를 도왔던 그는 10년 전 수도원 담장 밖으로 나와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다. 지은이의 사람 대접엔 배려심이 묻어나온다. 손님이 많으면 제일 많이 굶어 가장 배고픈 이에게 밥을 먼저 대접한다.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이다. 그런데 국수집에서마저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지은이뿐만 아니라 국수집 이웃들도 마냥 평범하진 않다. 화수동 주민들도 처음엔 노숙인들이 몰려들자 불평을 토로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이 동네에선 집값 떨어진다는 걱정을 하진 않는다. 보름마다 김치를 담글 때면 지나가던 이웃들이 하나둘 거든다. “행복이란 이웃과 더불어 살 때 선물처럼 주어진다.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고 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욕심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서영남 지음/휴·1만2000원.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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