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민주주의〉
〈노동조합 민주주의〉
조효래 지음/후마니타스·1만9000원 4·19 혁명 50돌, 5·18 광주민중항쟁 30돌…. 올해는 유달리 기념할 역사가 많다. ‘전태일 열사 분신사건’도 그중 하나다. 40주기를 맞는다. 1970년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 22살의 청년은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화염에 휩싸인 청년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절규하며 숨졌다. 그해 청계피복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후 전국 곳곳에서 노조가 생겨났다. 노조는 점차 이 나라 변혁운동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진보의 희망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노조와 노동운동에 대해 위기란 수식어가 붙었다. 분열과 비리, 성추행 사건까지 겹치면서 불신과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다. 하늘로 치솟던 노조원의 수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혁신의 자성조차 관성화돼 위기는 깊게 고착화됐다. 노동의 이런 위기는 민주주의와 진보의 위기로 이어졌다. 왜, 이렇게 됐나?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조효래 창원대 교수(사회학)가 펴낸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진단 및 처방서라고 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우선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나 전투적 정치성향이란 표피적 진단을 거부한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1987년 노동체제’란 구조에서 찾는다. 이 체제는 87년 6월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노동의 측면에서 보면 노동권이 명실공히 제도화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심각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내재하고 있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파편화되고 분산적인 노사관계, 기업수준의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단체교섭”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이런 성격은 “작업장 수준에서만” 노동의 시민권을 인정할 뿐, 사회적 연대를 위한 산별노조의 기능이나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제약했다는 것이다. 하여 “노사간의 권력관계에 따라서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동과 권력관계의 급변에 따라 붕괴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게 지은이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나? 지은이는 노동조합 내부의 정치과정, 곧 조합민주주의에서 답을 찾는다. 이는 노조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정치, 왜곡된 정파갈등이 민주노조운동의 병폐로 작용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지만, 더 핵심적인 이유는 “조합원들의 뜻을 수렴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노조 내부에서 합의를 모아가는”, 조합민주주의의 확대 없이는 노동운동의 재활성화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조합민주주의는 단순히 조합원 직선제나 선거제도의 활성화가 아니다. “지도부와 조합원들 사이에 그리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정파들 간에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문화적 혁신”을 가리킨다. 조 교수는 이를 ‘토의민주주의’로 개념지었다. 노동운동의 재활성화를 위한 그의 또 하나의 강조점은 “비정규 노동의 조직화와 이들과의 사회적 연대”다. 조 교수의 처방은 곧 ‘소통과 연대’라는 말로 집약된다.
모두 3부 11장으로 구성된 책의 내용은 그동안 조 교수가 발표해온 학술논문을 주제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주로 정치사회학적 관점에서 노조와 노동운동을 연구해온 그는 현재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부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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