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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언론은 어떻게 거짓말을 해왔나

등록 2010-06-18 17:48수정 2010-06-19 15:33

〈허위의 시대, 언론의 거짓말- 메인호를 기억하라〉<
〈허위의 시대, 언론의 거짓말- 메인호를 기억하라〉<
〈허위의 시대, 언론의 거짓말- 메인호를 기억하라〉<br>에릭 번스 지음·박중서 옮김/책보세·1만7000원

1850년대 미국 신문들은 일제히 “(서부에 가면) 굳이 금을 파낼 필요도 없다. 땅에서 주워 들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서부에서는 금이 바닥났기 때문에 보도만 믿고 서부로 몰려갔던 이들은 불과 몇 주 만에 알거지가 됐다. ‘골드러시’를 부추겨 많은 이들을 ‘황금 쫓던 닭’으로 만들어버린 이 보도의 출처는 폐광을 산 뒤 투자자를 모집해 사기치려는 사기꾼들이었다. 신문이 사기에 가담한 셈이다.

<메인호를 기억하라>는 미국이 독립하기 이전인 17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약 300여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미국 언론의 ‘왜곡과 날조’의 기록을 끄집어낸다. 미국 보수 방송 <폭스뉴스>에서 ‘폭스 뉴스 워치’를 10여년간 진행했던 지은이 에릭 번스는 2008년 <폭스뉴스>를 관둔 뒤 “폭스뉴스는 뉴스가 아니라 이야기”라며 그 자신의 ‘거짓말’도 비판적으로 고백한 언론인이다.

거짓말의 유형은 각양각색이다. 1700년대 벤저민 프랭클린은 혼외정사로 아이를 낳은 아이의 어머니만 혹독하게 처벌하는 법원 판결을 보고 ‘코네티컷에 사는 다섯 아이의 엄마 폴리 베이커 양의 재판’ 이야기를 지어내 신문에 싣는다. 1981년 <워싱턴 포스트>의 재닛 쿠크는 다섯 살부터 마약 중독자였던 흑인 아이 지미의 삶을 창조해내 퓰리처 상을 받았다. 어떤 이는 계몽을 위해, 어떤 이는 출세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어떤 거짓말은 역사의 방향을 뒤틀었다. 1897년 <뉴욕 저널> 발행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그 최고봉이다.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잦았고 스페인은 이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내심 쿠바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미국은 자국민 보호 명목으로 배 ‘메인호’를 아바나 앞바다에 급파한다. 그리고 어느날 배는 갑자기 폭발한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호전론자 허스트는 “군함 메인호, 적의 비밀 병기에 두 조각 나다” “스페인의 배신으로 인해 파선된 메인호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아바나만에 누워 있는가”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을 쏟아냈다. 심지어 해군 사문회에서 “메인호의 폭발이 사고”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그간의 보도를 정정하지 않았다. 결국 스페인과 미국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10달간 전쟁을 벌였다. 허스트와 그로부터 밥벌이를 잃지 않기 위한 <뉴욕 저널> 기자들의 도덕 불감증이 전쟁을 빚어낸 셈이다.

책에서 언급된 수많은 ‘허위’의 목록은 오늘날 한국 언론 현실을 비춘다. <뉴욕 저널>의 선동적 보도는 110여년 뒤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보도하는 한국 보수언론들의 보도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1900년대 초 펜실베이니아 재력가 앤드루 멜런의 ‘이혼 스캔들’에 입을 다문 펜실베이니아 모든 언론의 모습은 권력, 특히 자본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한국 언론과 닮았다. 단지 현장에서 발견되었을 뿐인 이주독일인을 연쇄살인범으로 몰고간 미국 언론들의 행태 또한 ‘무죄추정 원칙’을 외면하고 기소되는 순간부터 ‘유죄’처럼 보도하는 한국언론을 연상시킨다.

지은이는 수많은 거짓말의 목록을 통해 언론의 속살을 까발린다. 미국 독립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았던 샘 애덤스의 손에 들린 펜도 펜이 아니라 칼이라고 지적한다. 대의냐 아니냐의 판단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윤리의 마지노선임을 ‘거짓말의 목록’은 보여준다. 한국 언론이 손에 쥔 것은 진실을 쓰는 펜인가, 거짓을 쓰는 칼인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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