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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동북아와 미국의 운명 바꿨다

등록 2010-06-23 22:07

왼쪽부터 와다 하루키, 브루스 커밍스, 박명림, 선즈화.
왼쪽부터 와다 하루키, 브루스 커밍스, 박명림, 선즈화.
연세대 ‘한국전쟁과 동북아 평화’ 국제학술회의
국외 대표적 연구자 모여…체제 대결 대신 자국 내부 성찰

최근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선즈화 중국 화둥(화동)사범대 교수 등 국외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연구자들이 방한했다. 한국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국가에서 한국전쟁이란 연구주제에 천착했던 학자들이 모여서 한국전쟁의 유산을 극복하고 동북아시아 평화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와다 하루키 “안보협약과 경제성장 발판 등 일본 ‘전후체제’ 형성에 영향”
브루스 커밍스 “군산복합체와 국외 주둔 기지 등 미국 ‘세계 경찰국가’ 되는 계기”
박명림 “유럽 같은 ‘지역 다자기구’ 아닌 미 중심 동아시아 안보구도 낳아”
선즈화 “마오쩌둥, 유엔 휴전 결정 거부중국 국제적 지위 크게 약화돼”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동아시아협력센터는 23일 ‘한국전쟁과 동북아 평화’라는 주제로 특별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여한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들은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의 기원과 책임, 성격과 의미 규정 등에 얽매어 있던 접근을 탈피해 한국전쟁이 각 나라에 준 영향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연구자 자신이 속한 국가의 내부를 성찰함으로써, 그 동안 ‘적과 나’라는 이데올로기 또는 체제 대결구도를 재생산해왔던 한국전쟁 연구의 방향을 과감히 틀어보겠다는 뜻이다.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내전이지만 국제전이기도 했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중-미 전쟁’ 성격도 띠고 있었으며, 대만·일본 등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동북아 전쟁’의 성격도 갖고 있다. 일찍이 한국전쟁의 이런 국제전적 성격을 규명해왔던 와다 하루키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역내에 있는 모든 나라의 운명은 한국전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한국전쟁에 대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국의 전쟁 수행을 위한 군사적 요새로 기능하는 등 구조적으로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이 와다의 지적이다. 그는 “당시 일본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한 경찰예비대 동원, 해상보안군 동원 등 한국전쟁에 개입했었다”고 말했다. 또 일본은 한국전쟁과 평화협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일 안보협약, 평화헌법 9조, 낮은 수준의 자위대 등으로 대표되는 ‘전후 체제’를 형성했고, 한국전쟁에 기대어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곧 일본은 실질적으로 한국전쟁의 당사자이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스스로를 한국전쟁 밖에 있다고 인식해왔다는 것이다. 와다는 이에 대해 “한국전쟁의 유산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런 잔재에 대해 숙고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일본 스스로의 성찰을 강조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라로 바꿔놓을” 정도로 한국전쟁이 미국에 끼친 영향이 지대한데도, 미국 안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전쟁’으로 방치된 사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한국전쟁 뒤에 미국이 수백 개의 국외 주둔 미군 기지를 설치하게 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한국전쟁으로 미국에서 대규모 군산복합체가 일어서게 됐으며, 이것은 미군의 해외 주둔과 연결됐다”고 말했다. 곧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가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는 미국 지도자들은 북한과의 화해에 실패해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이해만이 진정한 화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한국전쟁은 대규모 국제전으로 번질 우려 때문에 다시 일어나기도 불가능했고, 그 결과 전쟁의 목표와 반대로 남북분단을 항구화·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한국전쟁을 계기로 동북아에는 미국을 중심 바퀴통으로, 동아시아를 바퀴살로 하는 ‘양자 통살관계’가 형성됐다”고 봤다. 곧 한국전쟁이 한국-미국, 일본-미국, 필리핀-미국 등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안보구도를 낳았다는 것이다. 지역 주체들 위주의 ‘지역다자기구’를 갖춘 유럽·동남아·중동 등과 다른 점이다. 때문에 그는 한국이 ‘교량국가’로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공동체 건설’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즈화는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미군을 38선 밑으로 내려보내고 중-소 동맹을 유지하려 했던 기존의 목표에서 벗어나, 한반도에서 미국을 아예 제거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전환한 것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마오쩌둥이 국제연합(UN)의 휴전 결정을 거부하는 오판을 내려, 전쟁은 2년이나 더 길어졌으며 중국의 국제적 지위는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24일에는 와다 하루키, 브루스 커밍스, 박명림 세 사람이 참여하는 ‘역사·진실·학문탐구’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이 열린다.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로서 어떤 계기로 한국전쟁 연구에 뛰어들게 됐는지 등 한국전쟁을 사례로 한 개인적·사회적 경험을 말할 예정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 한국전쟁을 연구하게 될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다르게 ‘자유와 이성’을 갖고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이데올로기 대결이 고착화된 현실 속에서 모순점을 발견해내고 비판해 온 선배 학자들의 경험을, 앞으로 연구의 주역이 될 젊은 세대들과 나누겠다는 취지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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