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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오늘에 되살아난 ‘살라딘’ ‘성전’ 멈출 방법은 없는가

등록 2005-06-16 17:49수정 2005-06-16 17:49

술탄 살라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미래엠앤비

마침내 예언자의 꿈이 이루어졌다. 10월2일, 무슬림 달력으로 라자브 달의 27일은 예언자가 꿈 속에서 이 도시를 방문한 날이었다. 이슬람의 모스크와 유대인의 시나고그가 있는 그곳의 이름은 알 쿠드스, 예루살렘이라고도 부른다. 싸움도 해보지 않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도시를 내놓을 수 없다고 하던 이들이 백기를 들었다. 이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계율을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90년 전 이 도시에서 프랑크족이 저질렀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미늘창 끝에 꽂아 놓았고, 노인과 여자들을 고문하고 불태웠다. 거룩한 도시의 거리에는 무슬림과 유태인의 피가 흘러넘쳤다.

<근본주의의 충돌>로 국내에 알려진 타리크 알리는 장편소설 <술탄 살라딘>에서 살라흐 앗 딘이 지나치게 너그러운 술탄이었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왕 앞에서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빈 자에게는 어김없이 관용을 베풀었다. 치정문제로 유능한 장교를 죽게 한 할리마를 거두어들였고, 자신의 남자 애인과 결혼한 누이가 간통죄로 고소되자 이를 해명한 쉐이크를 방면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성전을 벌이면서도 트리폴리의 레몽을 일러 선한 사람인 데다 한때 친구였다며 목숨을 살려주라고 명령했다. 레몽이 티레에 숨자, 머리는 틀렸다고 하나 심장이 신뢰를 깨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략적 요충지인 그 도시를 정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제가 다르다. 프랑크족은 시체더미 위에 권좌를 세웠다. 항거냐 항복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도시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은 죄책감과 공포 때문이었다. 술탄 살라흐 앗 딘은 맹세를 지키는 사람이다. 휴전협정을 깨고 무고한 순례자들을 잔인하게 죽인 레지날드의 심장에 칼을 꽂은 이가 바로 그였다. 그럼에도 이 쿠르드족 출신의 술탄은 약속을 지켰다. “프랑크족이 처음 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당신들은 유대인이나 신자들을 소떼처럼 도살했소. 우리도 똑같은 짓을 당신네한테 할 수 있지만 맹목적인 복수는 위험한 약일 뿐이오. 따라서 우리는 당신네 사람들이 평화롭게 그곳을 떠나게 해주겠소. 이것이 당신네 지도자들에게 제시하는 나의 마지막 제안이오. 이 제안을 거절하면 당신네 성벽을 태워버리고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겠소.” 제안을 받아들이자, 그는 자비를 베풀었던 것이다.

<술탄 살라딘>은 인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술탄의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도도한 물줄기를 그려내면서, 그 시대의 궁정생활과 풍속이라는 실개천을 섬세하게 살려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역사’소설이라 이름 붙일 수는 없다. 지은이는 과거라는 안락한 요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끔직한 전쟁터를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쓴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은 충돌하는 두 문명이 서로 성전을 펼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 시대다. 더욱이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야만이라 여기고 있다. 티리크 알리는 묻고 있다. 이 미친 짓을 끝낼 정신은 무엇이고, 정작 누가 더 야만적인가, 라고.

술탄은 소설의 화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귀 있는 이들에게는 섬뜩한 깨달음을 안겨주는 말이렷다!

“어제는 저한테 여호와와 하느님과 알라가 함께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도서평론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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