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대파국과 대타협의 분수령’ 쓴 정욱식씨
“무심코 ‘북핵 위기’란 말을 쓰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북핵 위기라는 말은 국제사회의 약속을 위반하고 핵 개발의 위기를 조성한 1차 책임이 북한에 있고 6자회담의 법정에 북한을 피고처럼 불러내려는 듯한 표현입니다.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은 미국의 근본책임은 감춰져 있죠. 공정하지 않아요.”
시사평론서 <북핵, 대파국과 대타협의 분수령>(창해 펴냄)을 낸 외교안보 시민단체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33) 대표는 지난 13일 ‘6·15 민족통일대축전’의 남쪽 민간대표단으로서 평양에 가기 전에 한 인터뷰에서 “북핵이라는 명칭을 바꿔야 북미 갈등의 해법이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양을 처음 방문하는 그는 “북한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많이 했는데 평양 방문이 불허되지 않아 다행이고 설렌다”며 “간혹 만난 북한 인사들은 정치·군사 분야에서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고 변화도 느껴졌는데 평양의 변화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주의’의 극복을 주장하는 책 <동맹의 덫>에 이어 두 달만에 낸 이 책에는 한반도 정세의 긴박감이 담겨 있다. 북핵 위기를 둘러싼 진실게임, 마주보고 달리는 북한의 핵 카드와 미국의 패권주의, 파국이냐 타협이냐 갈림길에 몰리는 한반도 상황을 집중 점검했다.
그가 분석한 부시 대통령 임기 중(2005~2008)의 한반도 시나리오는 외교안보의 경각심을 다시 일깨운다.
그의 여섯 가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평화적 해결. 6자회담의 운명이 가장 큰 변수다. ②교착상태의 지속. 6자회담 무용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장기적 교착 가능성은 작다. ③북한의 핵무장과 불안한 균형 유지. 이는 한반도 정세가 점차 비등점에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 ④강압적 수단에 의한 북한의 붕괴 또는 정권교체.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작다. 붕괴하더라도 통치주체는 사실상 미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⑤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밀 폭격 제한전.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⑥전면전. 한반도는 사실상 ‘끝나지 않는 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불안한 우리의 미래는 과연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가.
그는 사태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부시 정권도 북한 김정일 정권도 북미 관계정상화에 나서기가 구조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두 사회의 내부 문제는 복잡합니다. 국민과 군부·정치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의 문제, 정권의 지도력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관적입니다.”
한국의 ‘교집합 역할론’이 강조된다. “북미 사이엔 교집합이 없습니다. 한국이 더 큰 원을 그려 교집합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북미 관계정상화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면 우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경제제재에서 풀어주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북미를 압박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국내 처음으로 전문성을 갖춘 외교안보 시민운동을 벌여온 그는 외교안보가 소수전문가의 손에서 다뤄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외교안보는 소수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보면 딱딱한 주제이지만 사실 우리 삶을 좌우하는 문제죠. 외교안보를 소수전문가한테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입니다.” 평화네트워크는 인터넷 온라인(peacekorea.org)과 오프라인 행사들을 통해 북핵, 한미동맹, 군축 등 중요한 외교안보 문제의 자료 제공과 토론·강좌 등 행사를 열고 있다.
정 대표는 “외교안보에 대한 시민사회의 참여 폭도 그동안 넓어져 얼마 전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힐 국무부 차관보와 롤리스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우리 의견을 들었으며 한국 정부도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고 있다”며 “미국의 강경책도 반대하고 북한의 핵무장도 반대하는 말없는 다수 시민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