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국어교육〉
잠깐독서 /
〈삶을 위한 국어교육〉
수능이 끝나면 며칠 뒤 커다란 트럭이 학교로 들어온다. 아이들은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손때 묻은 문제집을 트럭에다 던져버린다. 지긋지긋했던 문제집이여 안녕~. 아이들은 속이 후련했을 게다. 그러나 햇병아리 국어교사에게 이런 장면은 충격이었다. “수능 성적표 한 장과 바꾸기 위해 아이들은 저 많은 책을 사서 밤낮없이 공부를 하고 선생들은 목이 터져라 수업을 했단 말인가.” 그는 분노했다.
현직 국어교사 이계삼씨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세상의 ‘현실’은 쏙 빼놓고 고담준론 ‘이상’만을 가르치는 학교교육에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뼈빠지게 공부해도 대부분의 청년들이 왜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는지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일제고사 등을 정당화한다. ‘언어의 타락’ 현상은 국어교사인 그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향한 더 큰 사명감을 얹어주었다. 포장된 말과 글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세상을 마주하게 하는 것, 이름하여 ‘삶을 위한 교육’이다.
그래서 그의 수업은 독특하다. 학습노동에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의식화’를 위해 그는 50분의 수업시간 중 ‘15분의 여백’을 두었다. 조류독감으로 살처분되는 상황에서 포대 안에서 고개를 빼꼼히 쳐든 닭의 사진을 통해 아이들과 탐욕의 문제를 토론한다. 훌륭한 ‘시가’라고 할 수 있는 대중가요나 팝송을 부르며 서정을 느끼게 했다. 지난 3년 동안 그가 고안한 수업방식과 각종 매체에 실린 글이 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나라말·1만3000원.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